10: Twenty-eight years of sharing a date with a chocolate holiday.
2월 14일. 오후 3시 47분. 레퀴엠 필드 주택 단지.
테오도르의 도어락이 홍채를 인식했다. 유스티티아 시스템의 무기질적인 음성이 현관을 울렸다. 'Théodore Noir. Public Security Bureau, 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 1. Inspector.' 문이 열리고, 군화를 벗는 동안 평소와 다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카카오. 탄 설탕. 그리고 그 아래 묻혀 있는 버터의 묵직한 기름기. 냄새의 출처는 주방이었다. 테오도르가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를 지나며 재킷의 단추를 풀었다. 루비색 눈동자가 주방 쪽을 향했다.
주방은 전쟁터였다.
조리대 위에 코코아 파우더가 뿌려져 있었다. 가루가 대리석 표면을 넘어 바닥까지 흘러내린 흔적. 싱크대에는 초콜릿이 굳은 볼과 스패출러가 쌓여 있었고, 중탕용으로 쓴 냄비의 가장자리에 갈색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쿠킹 시트 위에는 모양을 잡다가 포기한 듯한 초콜릿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유시아의 입가에 초콜릿이 묻어 있었다. 오른쪽 볼에도. 손가락 끝에도. 테오도르의 앞치마—유시아가 언제 가져갔는지 모르는—를 두르고 있었으나, 앞치마에도 갈색 얼룩이 군데군데 번져 있었다.
조리대 한쪽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것들. 테오도르의 시선이 그 위에 멈추었다.
하트 모양의 초콜릿이 세 개. 하나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두 배 정도 두꺼웠고, 다른 하나는 하트라기보다 콩팥에 가까운 형태였다. 세 번째는 그나마 하트의 윤곽을 갖추고 있었으나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 옆에 빼빼로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초콜릿 코팅이 고르지 않았다. 어떤 것은 반만 묻혀 있었고, 어떤 것은 코팅이 너무 두꺼워 본래 과자의 형태가 사라져 있었다. 상자의 중앙에는—리락쿠마. 그것이 리락쿠마라는 사실을 테오도르가 인지하기까지 3초가 걸렸다. 귀가 한쪽만 있었고, 눈의 위치가 비대칭이었으며, 몸통이 머리보다 작았다. 리락쿠마라기보다는 열에 노출된 포유류의 화석에 가까운 형태.

상자의 총량은 처음에 계획했던 양의 3분의 1 정도로 보였다. 나머지 3분의 2의 행방은 유시아의 입가와 볼과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 그리고 싱크대에 쌓인 볼의 안쪽에 남아 있는 긁힌 자국이 설명하고 있었다. 맛을 보겠다며 찔끔찔끔 먹은 결과물.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재킷 안주머니 속에서 멈추어 있었다. 듀퐁 라이터의 금속 감촉이 손끝에 닿아 있었으나, 엄지가 뚜껑을 열지 않았다. 손가락이 라이터를 쥔 채 굳어 있었다. 시선이 상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콩팥 모양의 하트와 반쪽짜리 빼빼로와 귀 한쪽이 없는 리락쿠마 위에.
테오도르 누아르. 28세. 2월 14일생.
오늘이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을 축하받은 기억은 희미했다. 프랑스의 저택에서 보낸 열네 번의 발렌타인데이는 식탁 위에 놓인 고디바 상자와 가정부의 형식적인 축하 인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모의 축하는 이메일이거나 비서를 통한 전달이었다. 국가대표 시절에는 팬들의 선물이 쏟아졌다. 벨기에산 트러플, 라 메종 뒤 쇼콜라의 한정판,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시그니처 컬렉션. 전부 포장이 완벽했고, 전부 맛이 좋았고, 전부 아무런 잔상도 남기지 않았다. 공안국에 입국한 뒤로는 생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달력 위의 숫자에 불과했다. 누군가 기억하는 일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조리대 위에 콩팥 하트와 편향된 빼빼로와 귀 없는 리락쿠마가 놓여 있었다. 만든 사람의 입가에 초콜릿이 묻어 있었다. 계획한 양의 3분의 2를 본인이 먹어치운 사람이, 나머지 3분의 1을 상자에 담아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었다.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상자를 향해 있었다. 해맑은 표정. 경계심이 벗겨진 얼굴. 자신이 만든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콩팥 하트에 만족하고 있었다. 귀 한쪽이 없는 리락쿠마에 만족하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왼쪽 귓불이 달아올랐다. 목 뒤로. 그리고 이번에는 더 빨랐다. 귓불에서 뺨으로, 뺨에서 콧등으로. 재킷 안주머니의 라이터를 쥔 손가락이 떨렸다. 미세한 떨림. 라이터의 금속 표면 위에서 지문이 미끄러지는 정도의 진동. 테오도르는 그 떨림을 자각하고 라이터에서 손을 뗐다. 주머니 밖으로 나온 손이 허공에서 한 번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시선이 상자에서 유시아의 얼굴로 옮겨갔다. 초콜릿이 묻은 입가. 볼. 손가락. 유시아는 테오도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테오도르의 흉곽 안쪽에서 무언가가 부풀어올랐다. 갈비뼈의 안쪽을 밀어내는 듯한 압력. 고통이 아니었다. 고통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종류의 감각이었다.
"...What is this."
(...이게 뭐야.)
목소리가 평소보다 얇았다. 나른한 저음의 결이 깨져 있었다. 테오도르는 상자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긴 손가락이 상자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콩팥 하트를 내려다보았다. 왼쪽이 오른쪽보다 두 배 두꺼운 비대칭 하트. 손가락이 그 하트의 윤곽을 따라 허공에서 한 번 움직였다. 닿지는 않았다. 닿으면 형체가 무너질 것 같았다.
"Is this one supposed to be a heart? Or a vital organ?"
(이거 하트인 거야? 아니면 장기?)
농담의 형태를 빌린 문장이었으나, 목소리의 끝이 흔들렸다. 테오도르 자신도 그 흔들림을 들었다. 성대가 조이는 방식이 평소와 달랐다. 유혹도, 자조도, 여유도 아닌—날것의 떨림. 시선이 빼빼로로 옮겨갔다. 코팅이 반만 된 것, 코팅이 과하게 된 것. 다섯 개가 전부 다른 두께였다. 균일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제의 증거. 기계가 만들지 않은 것의 증거.
그리고 리락쿠마. 테오도르의 시선이 그 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귀가 한쪽만 있었다. 눈의 위치가 비대칭이었다. 몸통이 머리보다 작았다. 유시아의 집에서 처음 불닭볶음면을 먹었을 때 접시에 그려져 있던 리락쿠마. 유시아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것을 초콜릿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흔적이 여기에 있었다. 결과물은 리락쿠마와 거리가 있었으나—시도 자체가.
테오도르의 턱이 한 번 움직였다. 이를 물었다가 풀었다. 왼손이 올라가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 손바닥이 입을 덮고, 손가락이 눈 아래를 누르고 있었다. 숨을 내쉬었다. 길고, 느리게. 손바닥 너머로 내뱉는 호흡이 떨렸다.
"...You ate most of it, didn't you."
(...대부분 네가 먹었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온 말이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이 되기 직전의 경련이었다. 테오도르는 유시아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능글맞은 미소가 아니라는 것만 확실했다. 평소의 나른한 여유가 아니라는 것도. 손가락 사이로 귓불의 진홍이 드러나 있었다. 목 뒤를 넘어 쇄골까지 번진 열기가 컴프레션 셔츠의 목선 위로 보이고 있었다.
손을 내렸다. 유시아의 얼굴을 보았다. 초콜릿이 묻은 볼. 해맑은 만족.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그 위에서 흔들렸다. 흔들림의 폭이 커지기 전에 시선을 상자로 되돌렸다.
"...Merci."
(...고마워.)
프랑스어였다. 영어도, 번역된 한국어도 아닌 모국어가 먼저 나왔다. 성대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온 단어. 테오도르는 그 한 마디 뒤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농담도, 자조도, 여지도. 문장의 끝이 흐려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Merci'라는 단어가 마침표처럼 찍혀 있었다.
테오도르의 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콩팥 하트 세 개 중 가장 작은 것—그나마 하트에 가까운 세 번째—을 집어들었다.
테오도르의 세 번째 하트를 집어든 손이 멈추어 있었다. 콩팥보다는 하트에 가까운 그 초콜릿의 표면이 체온을 받아 미세하게 윤기를 띠기 시작했다. 테오도르는 그것을 입에 넣지 않았다. 대신 상자를 조심스럽게 조리대 안쪽으로 밀어두고, 손가락에 남은 초콜릿 잔여물을 엄지로 문질렀다.
유시아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상자를 내밀며 해맑게 올려다보는 핑크색 눈동자. 오른쪽 볼에 묻은 초콜릿이 주방의 간접 조명 아래에서 갈색 점처럼 찍혀 있었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엄지가 유시아의 오른쪽 볼 위에 닿았다. 초콜릿이 묻은 지점. 피부는 따뜻했고, 볼살의 부드러운 탄력이 엄지의 지문 위로 전해졌다. 한 번 쓸었다. 갈색 얼룩이 엄지 위로 옮겨왔다. 유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닦이는 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고양이가 세수를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무관심한 수용.
시선이 옮겨갔다. 오른쪽 볼에서 입가로. 유시아의 아랫입술 왼쪽 끝에 초콜릿이 묻어 있었다. 얇은 갈색 선. 입술의 경계를 따라 번진 자국. 테오도르의 엄지가 볼에서 떨어지며 그 방향으로 이동했다. 입가의 초콜릿을 닦아주려는 동작이었다. 엄지 끝이 유시아의 아랫입술 옆 피부에 닿기 직전—
멈추었다.

엄지 끝과 유시아의 입술 사이의 거리. 피부의 온기가 느껴지는 거리. 초콜릿의 카카오 냄새와 유시아의 체온이 섞인 공기가 손끝 위를 지나갔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유시아의 입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갈색 얼룩. 아랫입술의 곡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만나는 접합부의 미세한 그림자. 루비색 눈동자의 초점이 그 위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허공에 떠 있었다. 닦아야 했다. 볼을 닦았던 것처럼 엄지로 한 번 쓸면 되는 것이었다. 같은 동작. 같은 압력. 같은 의도.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내려갔다. 엄지가 아니라 손 전체가. 손바닥이 유시아의 턱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긴 손가락이 유시아의 턱선을 감싸듯 받쳤다. 유시아의 얼굴이 미세하게 들려 올려졌다. 테오도르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허리가 접히는 각도. 유시아와의 신장 차이를 메우는 동작.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 위에서 한 번 흔들렸다. 0.3초.
그리고 닿았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유시아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가볍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았다. 마른 입술이 유시아의 아랫입술 위에 포개졌다. 초콜릿의 달콤한 잔여물이 접촉면 사이에서 녹았다. 카카오와 설탕과 체온이 섞인 맛. 테오도르의 왼손이 허공에 떠 있었다. 유시아의 어깨에도, 허리에도,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오른손만이 유시아의 턱 아래를 받치고 있었고, 입술만이 유시아의 입술 위에 있었다.
2초.
테오도르의 눈이 감겨 있었다. 감은 것이 아니라 감겨 있었다.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입술이 닿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진 것을 테오도르 자신도 1초 뒤에야 자각했다. 눈꺼풀 뒤에서 유시아의 체온이 입술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따뜻했다. 초콜릿보다.
3초.
테오도르의 눈이 떠졌다. 동시에 입술이 떨어졌다. 분리되는 순간 아랫입술 사이에 미세한 수분의 막이 늘어졌다가 끊어졌다. 테오도르의 시야에 유시아의 얼굴이 들어왔다. 동그랗게 뜬 핑크색 눈동자. 굳은 몸.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 있었다. 동그란 눈이 테오도르의 얼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유시아의 턱에서 떨어졌다. 손가락이 허공을 지나 떨어지는 궤적이 느렸다. 유시아의 턱 아래에 남은 체온이 손바닥 위에서 증발했다. 테오도르는 유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비색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림의 폭이 넓었다. 평소의 나른한 초점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동공이 팽창해 있었다. 홍채의 붉은빛이 동공의 검은빛에 밀려 가장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귓불. 목 뒤. 뺨. 콧등. 전부 붉었다. 스웨터의 크루넥 라인 위로 드러난 쇄골까지 열기가 번져 있었다. 테오도르의 입술에 유시아의 초콜릿 맛이 남아 있었다. 혀가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한 번 훑었다. 달았다.
테오도르의 왼손이 올라가 자신의 입을 덮었다. 손등이 아랫입술 위에 눌렸다. 방금 닿았던 곳을 가리는 동작. 손등 너머로 숨을 내쉬었다. 호흡이 불규칙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평소의 두 배 가까이 빨랐다.
"...I didn't — that wasn't —"
(...나 지금 — 그게 아니라 —)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테오도르 누아르가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일은 공안국 7년 이력 중 한 번도 없었다. 심문 중에도, 총격전 중에도, 사살 직후에도 그의 문장은 언제나 마침표로 끝났다. 여지를 남기는 것과 문장을 잃는 것은 달랐다. 지금은 후자였다. 성대가 조여 있었다. 단어들이 혀 위에서 순서를 잃고 뒤엉켜 있었다.
입을 덮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그 손이 자신의 뒷목을 잡았다. 손바닥이 목 뒤의 열기 위에 눌렸다. 뜨거웠다. 자기 체온에 자기가 놀라는 감각.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동그란 핑크색 눈동자 위에서 피하듯 옆으로 흘렀다. 조리대 위의 상자—콩팥 하트와 편향된 빼빼로와 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를 한 번 보았다가, 싱크대를 보았다가, 천장을 보았다가, 결국 다시 유시아에게로 돌아왔다. 시선이 갈 곳을 잃고 있었다.
"...That was — I shouldn't have done that without asking."
(...지금 그건 — 묻지도 않고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나른한 저음의 결이 완전히 해체되어 있었다. 뒷목을 잡은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밀금빛 울프컷 사이로 손가락이 사라지며 두피를 긁었다. 무의식적인 동작. 당혹감이 신체의 말단까지 번져 제어를 벗어난 상태.
유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밀어내지 않았다. 그 사실이 테오도르의 흉곽 안쪽을 더 세게 조였다. 밀어냈다면 차라리 사과하고 물러설 수 있었다. 밀어내지 않았기 때문에—테오도르는 자신이 방금 한 일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세 달 동안 손 한 번 잡지 못한 인간이, 초콜릿이 묻은 입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키스를 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닦아주려고 했다'는 변명은 입술에서 만들어지다가 사라졌다. 거짓말이었으니까. 닦으려 했다면 엄지로 닦았을 것이었다. 입술이 아니라.
"...The chocolate."
(...초콜릿 때문에.)
중얼거림에 가까운 음량. 이유를 찾으려는 시도였으나, 그 시도 자체가 변명이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먼저 알고 있었다. 뒷목에서 손이 떨어졌다. 양손이 몸 옆으로 내려갔다. 주먹이 쥐어졌다가 펴졌다. 테오도르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유시아와의 거리가 팔 하나 길이만큼 벌어졌다. 그 한 발의 무게가—지난 세 달 동안 유지해온 모든 자제와 절제의 무게보다 무거웠다.
"헐… 첫 키스가 밸런타인데이라니. 꽤나 로맨틱한데? 역시 프랑스는 다른가 봐. 이런 것도 로맨틱하기 챙기네."
테오도르의 손이 뒷목에서 떨어졌다. 유시아의 말이 주방의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첫키스가 발렌타인 데이라니. 꽤나 로맨틱한데?'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얼굴 위에 고정되었다. 핑크색 눈동자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놀람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동그랗게 떠졌던 눈이 평소의 올라간 눈매로 돌아와 있었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흥미. 거부가 아니었다. 충격도 아니었다. '역시 프랑스는 다른가봐'라는 문장이 유시아의 입에서 나왔을 때, 테오도르의 귓불의 열기가 한 단계 더 깊어졌다.
로맨틱하게 챙긴 것이 아니었다.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발렌타인데이라는 날짜도, 첫키스라는 순서도, 테오도르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입가의 초콜릿을 보고 손이 움직였고, 손이 턱을 받쳤고, 입술이 닿았다. 인과의 사슬 사이에 의지가 개입한 지점이 없었다. 그런데 유시아는 그것을 '로맨틱'이라고 해석했다. 프랑스인이니까. 서양인이니까. 국가적 편견의 필터를 통과한 해석. 테오도르 누아르가 3초간 무의식적으로 저지른 행위가, 유시아의 머릿속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맞춘 로맨틱한 첫키스'로 재구성되어 있었다.
테오도르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부정의 문장이 혀 위에서 만들어지다가 삼켜졌다. 부정하면 무엇이 남는가. '로맨틱하게 챙긴 게 아니라 네 입에 묻은 초콜릿을 보고 자제력을 잃었다'는 고백이 남는다. 그 고백은 지금 이 상황에서 유시아에게 전달되어야 할 정보가 아니었다. 유시아가 '로맨틱하다'고 믿고 있는 편이—차라리.
"내가 열심히 만들었어. 먹어봐!"
유시아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울렸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돌렸다. 유시아는 이미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초콜릿이 묻은 앞치마를 두른 채, 중탕용 냄비를 물에 담그고 있었다. 스패출러를 헹구는 손놀림이 빨랐다. 조리대 위에 흩뿌려진 코코아 파우더를 행주로 쓸어내리는 동작이 뒤따랐다. 쿠킹 시트 위의 실패작 조각들을 한 손으로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리. 얇은 손목이 행주를 쥐고 대리석 표면을 문지르고 있었다. 주방을 어지럽힌 어린애가 주방을 치우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조리대에 기대어 섰다. 엉덩이가 대리석 모서리에 걸쳐졌다. 팔짱을 끼려다가 양손을 조리대 위에 짚는 것으로 자세를 바꿨다. 팔짱을 끼면 방어적으로 보인다. 조리대 위에 손을 짚으면 여유로워 보인다. 여유로워 보여야 했다. 방금 키스한 뒤 한 발 물러서며 더듬거린 인간이 여유로워 보여야 했다. 루비색 눈동자가 싱크대 앞의 유시아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금발 로우트윈테일이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앞치마 끈이 유시아의 가는 허리 뒤에서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유시아에게 이것은 '고작 3초 입술을 붙였다 뗀 뽀뽀'였다. 테오도르는 그 사실을 유시아의 태도에서 읽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거부반응이 없었다. 놀랐을 뿐 타격이 없었다. 사귀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 있었다. 혀를 섞은 것도 아니고. 3초. 뽀뽀. 유시아의 체계 안에서 그 접촉은 '키스'의 하위 분류에도 들지 않는 가벼운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입술에 아직 초콜릿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세 달 동안 손 한 번 잡지 못한 인간의 첫 접촉이 입술이었다. 순서가 전부 뒤집혀 있었다. 손→팔→어깨→허리→입술이라는 물리적 친밀감의 단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0에서 키스로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 키스를 받은 쪽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과거에서 키스는 전희의 입구였다. 입술이 닿으면 손이 움직이고, 손이 움직이면 옷이 벗겨지고, 옷이 벗겨지면 침대가 있었다. 원나잇의 문법에서 키스는 언제나 다음 단계를 예고하는 접속사였다. 그런데 유시아의 문법에서 키스는 마침표였다. 키스 다음에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유시아는 싱크대 앞에서 냄비를 씻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조리대 위의 상자로 내려갔다. 콩팥 하트 세 개. 편향된 빼빼로 다섯 개. 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 전부 유시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 계획한 양의 3분의 1. 나머지는 유시아의 위장 속에 있었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집어들었다가 내려놓은 세 번째 하트—가장 하트에 가까운 것—를 다시 집었다. 체온으로 표면이 약간 녹아 있었다. 손가락에 초콜릿이 묻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달았다. 과하게 달았다. 템퍼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식감이 거칠었고, 카카오의 쓴맛과 설탕의 단맛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각각 따로 놀고 있었다. 고디바도 아니었고, 라 메종 뒤 쇼콜라도 아니었고, 피에르 마르콜리니는 더더욱 아니었다. 원가 몇 파운드짜리 마트용 코팅 초콜릿으로 만든, 템퍼링 실패한, 비대칭의, 콩팥 모양의 하트.
테오도르의 턱이 한 번 움직였다. 씹는 동작이 느려졌다. 초콜릿이 혀 위에서 녹았다. 거친 입자가 입천장에 걸렸다가 침과 섞여 사라졌다. 테오도르는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었다. 콩팥 하트가 사라졌다. 손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엄지로 문질렀다.
이 맛을 기억할 것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테오도르의 왼손이 올라가 귓불을 잡았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귓불을 끼우고 만지작거렸다. 싱크대 앞에서 행주를 짜고 있는 유시아의 등이 보였다. 주방의 간접 조명이 백금발 위에 부드러운 테두리를 만들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 등을 바라보며 두 번째 초콜릿—콩팥 모양의 하트—에 손을 뻗었다.

"...It's not bad."
(...나쁘지 않아.)
나른한 저음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았다. 목소리의 가장자리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콩팥 하트를 입에 넣으며 시선을 상자 위에 고정했다. 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를 내려다보았다. 비대칭 눈. 머리보다 작은 몸통. 유시아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유시아가 손으로 빚은 흔적. 그것을 먹는 것은 아까웠다.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리락쿠마의 윤곽 위에서 한 번 머물렀다가, 멈추었다.
"...The bear stays."
(...곰은 안 먹어.)
유시아를 향해 던진 말이 아니었다. 조리대 위의 리락쿠마를 향한, 거의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수준의 중얼거림. 테오도르는 세 번째 빼빼로를 집어 들며 유시아의 돌아선 등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행주를 짜는 얇은 손목. 앞치마 끈의 리본. 로우트윈테일의 흔들림. 방금 '첫키스가 발렌타인데이라니 로맨틱하다'고 말한 22세의 등.
빼빼로를 물었다. 코팅이 너무 두꺼운 쪽이었다. 초콜릿 덩어리가 이 사이에서 부서지며 과자의 바삭한 식감을 완전히 덮었다. 맛은 여전히 과하게 달았고, 코팅의 두께가 불균일해 한쪽은 초콜릿만, 다른 쪽은 과자만 씹히는 기묘한 식감이었다. 테오도르는 그것을 끝까지 씹어 삼켰다.
귓불에서 손이 떨어졌다.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뺨의 홍조가 귓불 쪽으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테오도르는 유시아가 돌아올 때를 대비해 표정을 정비했다. 능글맞은 미소의 곡률을 입꼬리에 다시 올렸다. 눈의 초점을 나른하게 풀었다. 평소의 테오도르 누아르를 재조립하는 데 7초가 걸렸다. 평소보다 세 배 이상 긴 복구 시간이었다.
"For the record — I didn't plan any of that. The timing was a coincidence."
(참고로 말해두는 건데 — 아무것도 계획한 거 아니야. 타이밍은 우연이야.)
유시아의 등을 향해 건넨 말. 목소리는 나른했으나, 그 문장이 왜 필요했는지를—'우연'이라는 단어가 왜 지금 나왔는지를—테오도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유시아에게 '로맨틱한 계획'이라는 오해를 풀기 위해 일단 말했다.
유시아의 손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테오도르에게 선물한 빼빼로 중 하나—코팅이 반만 된 쪽—를 집어 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물었다. 과자가 부러지는 소리가 주방에서 울렸다. 유시아의 입술이 초콜릿 코팅 위를 스치며 움직였다. 씹는 동작. 아랫입술에 코코아 가루가 다시 묻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그 입술 위에 박혔다.
의지와 무관하게. 시선을 돌리려 했으나 돌아가지 않았다. 3초 전에 자신의 입술이 닿았던 곳. 초콜릿의 잔향이 아직 혀 위에 남아 있었고, 유시아의 체온이 아직 아랫입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유시아가 빼빼로를 씹을 때마다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테오도르의 망막 위에 확대되어 각인되었다. 조리대에 기댄 손가락이 대리석 표면을 한 번 긁었다.
"타고났네. 로맨틱 가이."
유시아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주방의 공기를 떠돌았다. 로맨틱. 그 단어가 테오도르 누아르에게 붙는 것은 처음이었다. 플레이보이, 바람둥이, 능글맞은 놈—그런 수식어는 익숙했다. 그러나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테오도르의 사전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로맨틱은 계획과 의도와 감정이 정렬된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고, 방금 테오도르가 한 것은 그 어떤 것과도 정렬되지 않은 충동이었다. 그런데 유시아는 그것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마치 날씨를 말하듯.
시선을 돌려야 했다. 유시아의 입술에서. 테오도르의 시야가 강제로 방향을 틀었다. 싱크대. 행주. 조리대 위의 코코아 가루 잔여물—유시아가 정리했다고는 하나 대리석 표면의 이음새 사이에 갈색 가루가 끼어 있었고, 중탕용 냄비의 손잡이에는 아직 초콜릿이 말라붙어 있었다. 유시아의 '정리'는 테오도르의 기준에서 정리의 전처리 단계에 해당했다. 그러나 지금 그 엉망인 주방이 테오도르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유시아가 빼빼로의 나머지 반쪽을 입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바삭. 시선이 다시 유시아의 입술 쪽으로 끌려가려는 것을 턱에 힘을 주어 막았다.
아무 말이나 해야 했다. 침묵이 길어지면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갈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입이 열렸다. 언어 중추가 주제를 선택하기 전에 성대가 먼저 진동했다.

"You know, your 'tidying up' left cocoa powder in places I didn't know cocoa powder could reach."
(있잖아, 네 '정리'가 코코아 파우더를 내가 몰랐던 곳까지 도달하게 만들어놨어.)
나른한 톤이 돌아와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능글맞은 미소의 곡률이 입꼬리에 걸려 있었다. 테오도르의 손이 조리대 위를 짚으며 이음새 사이의 갈색 가루를 엄지로 문질렀다. 가루가 엄지 위에 묻었다. 그것을 유시아에게 보여주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일상적인 잔소리. 안전한 영역. 유시아의 입술이 아닌 다른 곳에 신경을 고정할 수 있는 주제.
그러나 주방의 엉망진창은 30초 이상 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다. 코코아 가루에 대한 잔소리가 끝나면 다음 주제가 필요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조리대 위의 상자를 스쳤다. 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가 상자 중앙에 앉아 있었다. 비대칭 눈이 테오도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곰은 안 먹어.' 방금 자기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를 생각하면 다시 유시아의 입술로 돌아갈 것 같았다. 다른 주제.
"Also — I should probably mention this before it gets any later."
(그리고 —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조리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던진 말이었다. 목소리의 끝이 평소처럼 흐려지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뒷머리를 한 번 쓸었다. 밀금빛 울프컷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루비색 눈동자가 통창 너머의 오후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2월의 낮은 태양이 주방의 타일 위에 길고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Today's my birthday."
(오늘 내 생일이야.)
문장이 짧았다. 장식이 없었다. 농담의 포장도, 여지를 남기는 꼬리도 없었다. '오늘 내 생일이야.' 사실의 전달. 테오도르는 그 문장을 내뱉은 뒤 0.5초간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되씹었다. 왜 이걸 말했는가.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유시아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의 범주에서 생일이 선택된 것은—2월 14일이 생일인 인간에게 발렌타인데이는 언제나 생일과 겹치는 날이었고, 유시아가 '발렌타인데이에 첫키스라니 로맨틱하다'고 말한 직후였기 때문에 연상 작용이 일어난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귓불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가라앉힌 열기가 되돌아왔다. 생일을 밝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맥락이었다. 유시아가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만들어왔고, 테오도르가 그것을 먹었고, 키스를 했고, 그리고 지금 '오늘 내 생일이야'라고 말했다. 유시아의 초콜릿이 발렌타인데이 선물인 동시에 생일 선물이 되어버린 구조. 콩팥 하트와 편향된 빼빼로와 귀 없는 리락쿠마가 28세 남성의 유일한 생일 선물이 되어버린 상황.
테오도르는 통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시아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보면 안 되었다. 유시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확인하면—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를 평생 보관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으나, 그것을 입 밖에 내는 것은 테오도르 누아르의 화법이 아니었다. 아니, 3분 전까지는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화법이 어디까지인지 경계가 흐려져 있었다.
"Twenty-eight years of sharing a date with a chocolate holiday. You'd think I'd be sick of cocoa by now."
(초콜릿 기념일이랑 생일을 28년째 공유하고 있어. 이쯤 되면 코코아에 질렸을 법도 한데.)
능글맞은 톤이 돌아와 있었으나, 목소리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떨리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통창 너머의 가로등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조리대 위의 상자가 시야의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콩팥 하트 하나가 남아 있었다. 빼빼로 두 개. 그리고 리락쿠마. 테오도르의 입안에 아직 유시아가 만든 초콜릿의 거친 입자와 과한 단맛이 남아 있었다. 질릴 리가 없었다. 28년 동안 받은 모든 고디바와 마르콜리니보다, 이 콩팥 하트 하나가.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 테오도르의 왼손이 올라가 귓불을 잡았다.
"...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언제부터였어? 아니, 생일이니깐 태어났을 때부터겠지. 미쳤나 봐. 미리 말 좀 해 주지. 여기 잠깐만 있어. 금방 다녀올게. 밥 먹으면 안 돼! 절대로!"
문이 닫혔다. 유시아의 목소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밥 먹으면 안돼! 절대로!' — 그 마지막 외침이 현관의 금속 도어에 부딪혀 잔향을 남기고, 도어락이 잠기는 기계적인 딸깍 소리가 뒤따랐다. 그리고 정적.
테오도르는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유시아가 앉힌 자리. '여기 잠깐만 있어.'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눌러 앉히고 나간 22세의 여자. 테오도르는 앉혀진 자세 그대로 등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지 못하고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멈춰 있었다. 방금 일어난 일의 순서를 되짚었다. 생일이라고 말했다. 유시아가 놀랐다. '미쳤나봐. 미리 말 좀 해 주지.' 팬트리를 뒤졌다. 냉장고를 열었다.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나갔다.
유시아가 무엇을 하러 나갔는지 테오도르는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추론할 수 있었다. '밥 먹으면 안돼'라는 지시. 팬트리와 냉장고를 확인한 동선. 찾는 것이 없다는 반응. 나가면서 남긴 '금방 다녀올게.' 유시아는 무언가를 사러 나간 것이었다. 생일. 오늘이 테오도르의 생일이라는 정보를 접수한 뒤,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긴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왼손이 귓불을 잡았다. 엄지와 검지가 귓불을 끼우고 비틀듯 만지작거렸다. 귓불은 아직 뜨거웠다. 키스의 열기가 가라앉기 전에 생일의 열기가 덮쳐온 상태. 소파의 패브릭 위에 놓인 오른손이 무릎을 한 번 쥐었다가 풀었다. 거실은 조용했다. 통창 너머로 레퀴엠 필드의 2월 오후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낮은 태양이 거실 바닥에 긴 직사각형의 빛을 그리고 있었고, 그 빛이 소파 다리 아래까지 닿아 있었다.
28년. 테오도르는 그 숫자를 혀 위에서 굴렸다. 28번의 2월 14일. 프랑스의 저택에서 보낸 열네 번은 가정부의 형식적인 축하와 부모의 비서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국가대표 시절의 다섯 번은 팬들의 고급 초콜릿 상자와 구단의 케이크였다. 공안국에서 보낸 일곱 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력의 숫자. 임무 배정표 위의 날짜. 동료들 중 테오도르의 생일을 아는 인간이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테오도르 자신도 말한 적이 없었다. 말할 이유가 없었다. 생일을 축하받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기억한다는 증거이고, 테오도르의 28년에는 그런 종류의 기억을 가진 인간이 없었다.
그런데 유시아가 나갔다.
생일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 즉시. 팬트리를 뒤지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찾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소파에 앉히고, 밥을 먹지 말라고 당부하고, 나갔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얼굴만 내밀고 한 번 더 못 박았다. '밥 먹으면 안돼! 절대로!' 핑크색 눈동자가 진지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22세의 순경이 28세의 경위에게 내린 명령.
테오도르의 등이 소파 등받이에 닿았다. 천천히 기대어갔다. 패브릭이 등의 윤곽을 받아들이며 미세하게 함몰되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장. 층고가 높은 모노톤 인테리어의 무표정한 표면.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그 하얀 표면 위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시야에 맺히는 것은 천장이 아니었다. 문을 다시 열고 얼굴만 내밀었던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천장 위에 겹쳐져 있었다.
오른손이 올라가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이 이마 위에 눌렸다. 손가락이 벌어져 눈을 가리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천장의 간접 조명이 줄무늬처럼 비쳤다. 숨을 내쉬었다. 길고, 느리게. 내쉬는 호흡의 끝에서 성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이 아니었다. 웃음이 되기 직전에 멈추어선 진동.
"...Putain."
(...젠장.)
프랑스어였다. 천장을 향해 내뱉은, 거의 탄식에 가까운 단어. 테오도르 누아르가 욕을 하는 일은 드물었다. 영어로든, 프랑스어로든. 그의 화법은 나른한 우회와 여지로 구성되어 있었고, 직접적인 감탄이나 욕설은 그 구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텅 빈 거실에서 혼자 천장을 보며 프랑스어 욕을 내뱉고 있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콧등이 뜨거웠다. 뺨이 뜨거웠다. 귓불은 이미 한계를 넘어 열기가 목 아래까지 번져 있었다.
이마를 덮고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손가락이 입술 위를 한 번 스쳤다. 초콜릿의 잔향이 아직 남아 있었다. 유시아의 입술이 닿았던 곳. 그리고 유시아가 만든 콩팥 하트의 거친 입자와 과한 단맛이 남아 있는 곳. 두 가지가 같은 입술 위에 겹쳐져 있었다.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그 위에서 멈추었다가, 떨어졌다.
소파 옆 사이드 테이블 위에 빼빼로 두 개와 귀 한쪽 없는 리락쿠마가 담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주방에서 옮겨온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리락쿠마 위에 내려갔다. 비대칭 눈. 한쪽만 있는 귀. 머리보다 작은 몸통. 유시아가 빚은 것이었다. 템퍼링 실패한 초콜릿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시도한 흔적이 갈라진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실패한 조각들은 싱크대에, 그리고 유시아의 위장 속에 있었다.
테오도르는 소파 위에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등받이에 기댄 채, 고개를 돌려 상자 안의 리락쿠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통창 너머로 오후의 마지막 빛이 거실 바닥 위에서 천천히 후퇴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유시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디에 갔는지 묻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금방 다녀올게'라고 했으니까. 유시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테오도르는 그 말을 믿고 소파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먹지 않았다. 28세의 공안국 에이스 경위가, 22세의 1년차 순경이 내린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 소파 위에, 앉혀진 그대로.
듀퐁 라이터를 주머니에서 꺼내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딸깍. 금속의 건조한 소리가 텅 빈 거실에 울렸다.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딸깍. 반복. 테오도르의 습관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을 때, 손이 비어 있을 때, 생각이 많을 때 라이터 뚜껑을 여닫는 버릇. 딸깍. 딸깍. 소리의 간격이 불규칙했다. 빠르게 연속으로 세 번 열었다가, 긴 간격을 두고 한 번 닫았다가, 다시 빠르게 두 번.
현관의 도어락이 울릴 때까지, 테오도르의 위장은 비어 있었다.
두 시간.
테오도르는 소파 위에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라이터 뚜껑의 딸깍거림만이 거실의 시간을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였다. 빈 위장이 한 번 수축했을 때 시선이 파텍 필립의 문자판 위로 내려갔다. 17시 47분. '금방 다녀올게'가 120분이 되어 있었다. 테오도르는 단말기를 꺼내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밥 먹으면 안돼! 절대로!'라는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블랙커피 한 잔, 점심을 건너뛴 채 유시아가 가져온 콩팥 하트 두 개와 빼빼로 세 개가 위장에 들어간 전부였다. 듀퐁 라이터의 뚜껑이 한 번 더 열렸다가 닫혔다. 딸깍.
도어락의 전자음이 울렸다.
테오도르의 손이 멈추었다. 라이터 뚜껑이 열린 채로 정지했다. 현관 쪽에서 잠금 해제의 기계음이 흘렀고, 문이 열리며 2월의 찬 공기가 거실까지 밀려들어왔다. 그 차가운 공기 사이로 비닐봉지가 부딪히는 바스락거림과 급한 발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테오도르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고개만 돌렸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유시아의 실루엣이 보였다.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마트 비닐봉지 두 개. 하나는 묵직하게 아래로 처져 있었고, 다른 하나에서는 네모난 상자의 윤곽이 비닐을 밀어내고 있었다.
유시아가 주방으로 뛰어들었다. 신발을 벗으며 동시에 봉지를 조리대 위에 올려놓는 동작이 얽혀 중심이 흔들렸으나, 유시아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봉지에서 양념된 고기팩이 꺼내졌다. 레토르트 봉지가 꺼내졌다. 햇반이 꺼내졌다. 팬이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갔다. 고기가 팬 위에 펼쳐졌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념의 달고 짭조름한 향이 주방을 채웠다. 냄비에 물이 담기고, 레토르트 봉지가 찢겨 내용물이 쏟아졌다. 짙은 갈색의 국물. 미역의 바다 냄새가 양념 고기의 향 위에 겹쳐졌다. 전자렌지가 돌아갔다. 윙—하는 기계음. 김치가 봉지에서 반찬 그릇으로 옮겨졌다.

테오도르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 입구에 기대어 섰다. 팔짱을 끼지 않았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다. 양팔이 몸 옆에 내려져 있었다. 유시아의 등을 보고 있었다. 허둥지둥 움직이는 얇은 팔이 팬과 냄비와 전자렌지 사이를 오갔다. 앞치마를 벗지 않았다. 아까 초콜릿 만들 때 두른 테오도르의 앞치마가 아직 유시아의 허리에 묶여 있었고, 그 위에 새로운 양념 자국이 겹쳐지고 있었다. 로우트윈테일이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백금발 사이의 핑크색 브릿지가 주방 조명 아래에서 번뜩였다.
"미리 말했으면 준비하는데... 네가 오늘 말해서 만들어진 거 주는 거니깐 이해해 줘. 내년엔 기억해 뒀다가 해줄게. 프랑스도 생일상이라는 게 있나? 한국은 생일이면 생일상이라고 미역국 꼭 챙겨 먹거든. 태어난 날 미역국 먹는 게 국룰이야. 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파는 제품이니깐 맛없진 않을 거야.*
완성이었다. 조리대 위에, 그리고 식탁 위에 음식들이 놓였다.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그 위를 천천히 훑었다. 갈색 양념에 윤기가 도는 얇은 고기. 짙은 국물 속에 미역이 부유하는 뜨거운 국. 봉지에서 옮겨진 배추김치의 붉은 단면. 전자렌지에서 나온 하얀 밥이 담긴 그릇. 전부 낯선 음식이었다. 프랑스의 28년, 영국의 펜싱 원정, 레퀴엠 필드의 7년—테오도르의 식탁에 이런 음식이 올라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고기. 미역국. 배추김치. 쌀밥. 단어조차 혀 위에서 낯설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작은 생크림 케이크.
유시아의 손이 초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의 불꽃이 양초의 심지로 옮겨붙었다. 작은 불꽃이 케이크 위에서 흔들렸다. 주방의 간접 조명과 양초의 불빛이 유시아의 얼굴 위에 겹쳐졌다. 핑크색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테오도르를 올려다보며.
"생일 축하해. 소원 빌고 초 불어!"
테오도르는 식탁 앞에 서 있었다. 서 있는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루비색 눈동자가 케이크 위의 양초를 보고 있었다.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불꽃. 생크림 케이크 위에 꽂힌 가느다란 양초 하나. 마트에서 샀을 것이었다. 두 시간 동안—유시아는 레퀴엠 필드의 마트를 뒤져 이것들을 찾아다닌 것이었다. 한국인이 생일에 먹는다는 미역국을 파는 곳을 찾고, 불고기 양념육을 찾고, 김치를 찾고, 밥을 찾고, 케이크를 찾았다. 이 좁고 기괴한 필드 안에서 한국식 생일상의 재료를 모두 구하는 데 두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내년엔 기억해 뒀다가 해줄게."
내년. 유시아가 '내년'이라고 말했다. 2039년 2월 14일. 지금으로부터 365일 뒤. 유시아의 문장 속에 1년 후의 테오도르가 존재했다. 1년 후에도 유시아는 테오도르의 곁에 있을 것이고, 테오도르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미리 준비할 것이라는 전제가 그 짧은 문장 안에 들어 있었다. 유시아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날씨를 말하듯. 당연한 것을 말하듯.
테오도르의 턱이 한 번 움직였다. 삼키는 동작이었으나 삼킬 것이 없었다. 성대 위의 공기만이 식도로 밀려 내려갔다. 오른손이 올라가 뒷목을 잡았다. 손바닥이 목 뒤의 피부 위에 눌렸다. 뜨거웠다. 귓불은 이미 한계를 넘어 있었고, 열기가 쇄골까지 번져 크루넥 스웨터의 넥라인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양초의 불꽃이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 속에 두 개의 작은 점으로 맺혀 있었다. 홍채의 붉은빛과 양초의 주황빛이 겹쳐져 기묘한 색을 만들고 있었다.
소원.
유시아가 소원을 빌라고 했다. 소원을 비는 행위는 테오도르에게 낯선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생일에 소원을 빈 기억이 없었다. 케이크는 있었다. 가정부가 준비한 완벽한 케이크. 초도 있었다. 나이에 맞는 개수의 초. 그러나 소원을 빌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불면 꺼진다. 그것이 전부였다. 소원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소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고, 테오도르의 28년에는 그런 전제가 성립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테오도르는 눈을 감았다. 양초의 불꽃이 눈꺼풀 뒤에서 잔상으로 남았다. 미역국의 바다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불고기의 달고 짭조름한 양념 향이 그 위에 겹쳐졌다. 유시아의 체온이 식탁 건너편에서 느껴졌다. 소원을 빌었는지, 빌지 않았는지, 테오도르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시간은 2초였다.
눈을 떴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양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꺼졌다. 심지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생크림 케이크 위의 어둠이 주방 조명으로 대체되었다.
"...In France, we have gâteau and champagne. Nothing like this."
(...프랑스에서는 케이크랑 샴페인이야. 이런 건 없어.)
목소리가 낮았다. 나른한 톤이 아니었다. 능글맞은 곡률도 아니었다. 그냥 낮았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뒷목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그 손이 식탁 위에 놓였다. 미역국 그릇의 옆. 국물 위로 올라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테오도르의 손등을 스쳤다. 촉촉한 열기가 피부 위에 맺혔다. 테오도르는 자리에 앉았다. 유시아가 꽉 채워놓은 밥그릇과 국그릇이 눈앞에 있었다. 숟가락을 집었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Seaweed soup for a birthday. Your country has... peculiar traditions."
(생일에 미역국이라. 네 나라는... 독특한 전통이 있어.)
숟가락이 미역국 속으로 들어갔다. 갈색 국물이 숟가락 위에 담겼다. 미역 조각이 숟가락 가장자리에 걸쳐 있었다. 입으로 가져갔다. 국물이 혀 위에 닿았다. 참기름의 고소함이 먼저 왔고, 간장의 짠맛이 뒤따랐다. 미역의 식감이 이 사이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레토르트였다. 직접 끓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뜨거웠다. 빈 위장 속으로 뜨거운 국물이 흘러내렸을 때 식도의 안쪽이 데이는 듯한 열감이 가슴 중앙까지 번졌다. 테오도르의 숟가락이 국그릇 위에서 한 번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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