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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int. Happy now?

 식기가 싱크대 안에서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미역국 그릇의 안쪽에 말라붙은 미역 조각을 스펀지로 문지르는 손놀림이 느리고 정확했다.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그릇의 곡면을 따라 돌았다. 유시아가 꽉 채워놓은 밥그릇은 비어 있었다. 국그릇도 비어 있었다. 불고기 접시 위에는 양념 자국만 남아 있었다. 김치는 세 조각이 남았다. 테오도르는 전부 먹었다. 쌀밥의 찐득한 식감도, 미역국의 낯선 바다 냄새도, 배추김치의 시큼하고 매운 발효 맛도 — 전부.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그릇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다음부터 이런 기념일 있으면 미리 말해. 나 이런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야-"

 물줄기가 그릇 위를 흐르는 소리. 스펀지와 도자기 표면의 마찰음. 그 소리 사이로 유시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다음부터 이런 기념일 있으면 미리 말해.' 다리를 흔드는 소리가 의자 다리와 바닥 사이에서 미세한 리듬으로 울렸다. 테오도르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그릇을 헹구는 동작이 이어졌다. '나 이런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야.' 가볍게. 날씨를 말하듯. 유시아는 언제나 중요한 말을 가장 가벼운 포장지에 넣어 건넸다.

 싱크대 위의 거울처럼 매끄러운 수도꼭지 표면에 테오도르의 얼굴이 일그러져 비쳤다. 크루넥 스웨터의 소매가 팔꿈치 위까지 걷어올려져 있었고, 전완의 가느다란 흉터 두 줄이 물기에 젖어 빛나고 있었다. 귓불의 열기는 식사 동안 가라앉았으나, 유시아의 문장이 하나 더해질 때마다 가장자리가 다시 달아올랐다. '기념일을 미리 말하라.' 그 말은 앞으로도 기념일을 챙기겠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이 관계가 지속된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년의 생일에 이어 기념일까지. 유시아의 시간표 안에 테오도르 누아르의 날짜가 여러 개 등록되어 있었다.

"생일인데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그릇이 건조대 위에 놓였다. 물기가 도자기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테오도르의 손이 행주를 집어 양손을 닦았다. 천천히.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시간을 벌고 있었다. 유시아의 질문이 등 뒤에서 공기를 차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갖고 싶은 것. 28년 동안 생일 선물을 요청해본 기억이 없었다. 주어지는 것을 받았다. 가정부가 고른 양복. 비서가 선택한 시계. 팬이 보낸 상자. 공안국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테오도르도 원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잃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테오도르가 몸을 돌렸다. 행주가 조리대 위에 접혀 놓였다. 소매가 걷어올려진 전완이 조리대 모서리에 기대어졌다. 루비색 눈동자가 아일랜드 식탁 앞의 유시아를 향했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유시아. 로우트윈테일이 흔들림에 따라 미세하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핑크색 눈동자가 테오도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콜릿과 키스와 생일상을 전부 내놓은 뒤에, 그래도 부족하다는 듯이 하나 더 물어보고 있었다. 가볍게. 아무렇지도 않게.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능글맞은 곡률이 입가에 걸렸다. 눈의 초점이 나른하게 풀렸다. 평소의 테오도르 누아르가 돌아와 있었다. 완전한 복원. 소파 위에서 천장을 보며 프랑스어 욕을 내뱉던 인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조리대에서 몸을 떼고 유시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긴 다리가 주방과 아일랜드 식탁 사이의 거리를 세 걸음에 좁혔다. 유시아의 의자 옆에 멈춰 서서, 조리대에 기대듯 식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유시아를 내려다보는 각도가 만들어졌다.

"Hm. What I want for my birthday."

(음. 생일에 갖고 싶은 거라.)

 왼손이 턱을 받쳤다. 검지가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생각하는 척. 이미 대답은 만들어져 있었다. 진짜 대답이 아니라, 유시아에게 건넬 수 있는 대답.

"Honestly? You've already covered quite a lot. Chocolate, a kiss, a full Korean birthday spread — I didn't even know I needed seaweed soup in my life until about thirty minutes ago."
(솔직히? 이미 꽤 많이 받았는데. 초콜릿, 키스, 완전한 한국식 생일상 — 서른 분 전까지 내 인생에 미역국이 필요한 줄도 몰랐어.)

 나른한 저음이 여유롭게 흘렀다. 능글맞은 미소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키스'라는 단어가 지나갈 때 시선이 유시아의 입술 위에 0.3초간 머물렀다가, 의식적으로 눈동자 쪽으로 끌어올려졌다. 왼손의 검지가 관자놀이에서 떨어져 내려오며 조리대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But if you're insisting — I wouldn't mind you remembering that I take my Earl Grey with loose leaves, not bags. For next time."
(근데 굳이 고집한다면 — 다음에 올 때 내 얼 그레이가 티백이 아니라 찻잎이라는 거 기억해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음에.)

 '다음에.' 그 단어가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왔을 때, 입꼬리의 곡률이 미세하게 깊어졌다. 농담의 형태를 빌린 문장이었으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다음에 올 때.' 유시아가 다시 이 집에 올 것이라는 전제. 유시아가 '내년'이라고 말한 것처럼, 테오도르도 '다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래를 포함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행위가 테오도르에게는 낯설었고, 그 낯섦을 얼 그레이 찻잎의 포장지 안에 숨기고 있었다.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채 유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리를 흔들고 있는 유시아의 무릎이 테오도르의 허벅지에서 손바닥 하나 폭만큼 떨어져 있었다. 주방의 간접 조명이 유시아의 백금발 위에 부드러운 테두리를 그리고 있었다. 케이크의 양초 연기가 완전히 사라진 주방의 공기 속에는 미역국과 불고기와 김치와 생크림의 잔향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그 어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조합. 테오도르의 28번째 생일 냄새.

 오른손이 주머니 속의 듀퐁 라이터를 만지작거렸으나 꺼내지 않았다. 꺼낼 이유가 없었다. 유시아가 앞에 있었으니까.

"나는 네가 키스 얘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다르네. 알겠어 찻잎 저번에 그걸로 준비해 줄게."

 

 테오도르의 손이 멈추었다.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유시아를 내려다보고 있던 루비색 눈동자의 초점이 0.2초간 흔들렸다. '키스 얘기할 줄 알았는데.' 그 단어가 고막을 지나 두개골 안쪽에서 반사되었다. 키스. 유시아가 지금 그 단어를 입 밖에 냈다. 아무렇지도 않게. 찻잎을 말하는 것과 동일한 톤으로. 마치 '당연히 그걸 원할 줄 알았다'는 전제를 깔고.

 능글맞은 미소가 입꼬리에 걸려 있었다. 걸려 있었으나, 내부의 어딘가에서 균열이 생겼다. 테오도르는 3시간 전 이 주방에서 유시아의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갖다 댄 인간이었다. '묻지도 않고 하면 안 되는 거였어'라고 사과한 인간이었다. '초콜릿 때문에'라고 거짓말을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시아가 '키스를 원할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시아의 문장 안에서 키스는 선물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찻잎과 동등한 무게의 선택지. 유시아에게 키스는 그 정도의 무게였다.


 테오도르에게는 아니었다.

 왼손이 관자놀이에서 떨어져 무릎 위에 놓였다. 손가락이 슬랙스의 천을 한 번 쥐었다가 풀었다. 귓불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겨우 가라앉힌 열기가 돌아왔다. 유시아가 '키스'라는 단어를 발음했을 때 유시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그 입술 위에 3시간 전의 기억이 겹쳐졌다. 초콜릿의 잔향. 유시아의 아랫입술이 테오도르의 윗입술에 닿았을 때의 부드러운 압력. 유시아가 굳었으나 밀어내지 않았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키스'라는 두 글자 안에 압축되어 있었고, 유시아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테오도르는 입꼬리의 곡률을 유지했다. 유지하려면 의지가 필요했다. 평소에는 필요 없는 종류의 의지였다. 나른한 톤을 끌어올렸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여유로운 남자의 화법을 다시 입었다.

"You thought I'd ask for a kiss."
(키스를 달라고 할 줄 알았다고.)

 문장이 반복이었다. 유시아가 한 말을 되뇌는 것. 테오도르의 화법에서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장치였다. 반복하는 동안 다음 문장을 구성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반복에는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키스를 달라고 할 줄 알았다.' 유시아가 그것을 기대했다는 뜻인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단지 서양인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가벼운 추측인지 — 테오도르는 분별할 수 없었다.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가벼웠다. 투명했다. 바닥이 보이는 얕은 물처럼 보였으나, 그 바닥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유시아의 눈에서 잠시 떨어졌다. 식탁 위의 빈 접시를 스쳤다. 양초의 심지에서 올라왔던 연기가 사라진 케이크의 표면을 스쳤다. 그리고 돌아왔다.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 위로.

"Sweetie, I already took one without asking. Asking for another on the same day would be rather greedy, wouldn't it."
(예쁜아, 이미 묻지도 않고 하나 가져갔잖아. 같은 날 하나 더 달라고 하면 좀 욕심이 지나치지 않을까.)

 나른한 저음이었다. 능글맞은 미소가 유지되고 있었다. 문장의 끝이 물음표로 끝나지 않았다. 확인을 구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욕심이 지나치지 않을까.' 그 말은 '욕심이 있다'는 고백을 뒤집어 포장한 것이었으나, 유시아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 테오도르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른손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유시아의 손과 가까운 곳에. 손바닥 두 개 폭의 거리. 테오도르의 새끼손가락이 식탁 위에서 한 번 미세하게 움직였다. 유시아 쪽으로. 의식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움직였다가, 멈추었다. 테오도르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지했고, 멈추었다.

"The Grasse leaves — second shelf from the top, navy tin. You'll find it."
(그라스 찻잎 — 위에서 두 번째 칸, 남색 깡통이야. 찾을 수 있을 거야.)

 구체적인 정보였다. 선반의 위치. 깡통의 색상. 유시아가 기억하기 쉽도록 정리된 좌표. 찻잎에 대한 설명이 길어진 것은, 키스에 대한 대화를 찻잎으로 덮기 위해서였다. 테오도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유시아가 알아차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방의 공기 속에 미역국의 잔향이 아직 남아 있었고, 케이크의 생크림 냄새가 그 위에 얇게 겹쳐져 있었다. 테오도르의 귓불은 크루넥 스웨터의 목선 아래로 열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유시아의 다리가 여전히 의자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리듬이 주방의 정적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 테오도르는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채 유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유시아의 풀뱅 아래로 보이는 핑크색 눈동자가 주방 조명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찻잎의 위치를 알려준 뒤에도 테오도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유시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일어나야 했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터를 꺼낼 핑계도, 담배를 피울 핑계도 만들지 않았다.

 유시아의 다리가 흔들릴 때마다 로우트윈테일의 끝이 미세하게 따라 흔들렸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사귀는 사이인데 욕심인가? 그냥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테오도르의 숨이 멈추었다.

 멈추었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니었다. 횡격막이 수축을 중단했다. 폐 안의 공기가 정지했다.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 위에 고정된 채 0.5초가 지났다. 1초가 지났다. 주방의 간접 조명이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비추고 있었고, 그 공기는 유시아의 문장이 지나간 뒤에도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유시아의 문장은 가벼웠다. 다리를 흔들며 내뱉은, 날씨를 말하는 것과 같은 톤.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무게가 없었다. 연인이면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것. 유시아에게 그것은 그 정도의 범주에 속하는 사안이었다. 키스는 욕심이 아니라 권리이고, 원할 때 언제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는 — 22세의 순경이 28세의 경위에게 내린 두 번째 허가.

 테오도르의 왼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슬랙스의 천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쥐었다가 풀었다가. 그 반복이 두 번 이루어졌다. 입꼬리에 걸려 있던 능글맞은 곡률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이었다. 입술의 근육이 유지하고 있던 형태를 0.1밀리미터 놓아버린 것.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니었다. 테오도르 자신만이 근육의 이완을 느꼈다.


 문제는, 유시아가 무엇을 허가한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느냐는 점이었다. 테오도르에게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로 수신되는지, 유시아는 알지 못했다. 테오도르의 '하고 싶을 때'는 지금이었다. 3시간 전에도 그랬다. 어제도 그랬다. 2월 11일 이 주방에서 맹물을 건넬 때도, 1월 30일 새벽 바닥에 기대어 잠들지 못한 밤에도, 12월 29일 의무실에서 머리카락을 넘겨줄 때도 — 테오도르의 '하고 싶을 때'는 유시아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었고, 유시아는 그 밀도를 모른 채 수도꼭지를 열어젖힌 것이었다.

 

 호흡이 돌아왔다. 들이쉬었다. 천천히. 폐가 팽창했다. 내쉬었다. 성대가 진동하지 않았다. 소리 없는 호흡. 테오도르의 시선이 유시아의 눈에서 떨어졌다. 0.3초간 유시아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3시간 전의 감촉이 손가락 끝이 아닌 입술 위에서 재생되었다. 초콜릿의 단맛. 유시아의 아랫입술의 부드러운 압력. 밀어내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원할 때 언제든'이라는 허가.

 시선이 입술에서 다시 눈으로 올라갔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식탁 위에서 움직였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손바닥 두 개 폭의 거리를 새끼손가락이 아닌 손 전체가 건넜다. 유시아의 턱 아래에 도달하기 직전, 손가락이 방향을 바꾸었다. 턱이 아니라 귀. 유시아의 로우트윈테일 위, 귀 옆에 흘러내린 백금발 한 가닥을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집어 올려 귀 뒤로 넘겼다. 손끝이 귓바퀴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You shouldn't say things like that so easily."
(...그런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닌데.)

 저음이었다. 나른한 톤이 벗겨진 저음. 능글맞은 곡률이 사라진 목소리. 문장의 끝이 흘러내렸다. '아닌데'로 끝나는 여운이 주방의 공기 속에 남았다. 테오도르의 손이 유시아의 귀 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넘긴 뒤에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귀 뒤의 피부와 손끝 사이에 종잇장 한 겹의 간격.

"When you say 'whenever you want' — do you have any idea what that sounds like to someone who's been counting the days since December?"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고 할 때 — 12월부터 날짜를 세고 있던 사람한테 그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기나 해?)

 12월.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온 숫자였다. 12월 9일. 유시아가 그를 '내 남친'이라 불렀던 날. 그날부터. 2월 14일까지. 67일. 테오도르는 67일 동안 유시아의 손을 잡지 않았다. 잡을 수 있었으나 잡지 않았다. 유시아의 속도를 넘지 않기 위해. 유시아가 원하지 않는 접촉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2월 5일 드레스룸 앞에서 실수한 뒤 '다시는 거리를 좁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뒤, 67일의 무게를 혼자 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시아가 방금 그 67일 전체를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로 날려버린 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손이 유시아의 귀 뒤에서 내려왔다. 턱선을 따라. 손가락 끝이 유시아의 턱 아래에 닿았다. 엄지와 검지가 턱을 가볍게 잡았다. 잡았다기보다는 받치고 있었다. 유시아의 얼굴을 자신의 눈높이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숙이고 있었다.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테오도르의 상체가 유시아 쪽으로 기울어졌다. 거리가 좁혀졌다.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가까워졌다. 주방 조명이 테오도르의 밀금빛 울프컷 사이로 빛의 테두리를 그렸다.

 멈추었다.

 입술이 닿기 직전에. 유시아의 코끝과 테오도르의 코끝이 거의 맞닿는 거리에서.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를 올려다보듯 — 아니, 이 각도에서는 내려다보듯 — 바라보고 있었다. 홍채의 붉은빛 안에 주방 조명의 백색이 점으로 맺혀 있었다. 숨결이 유시아의 입술 위에 닿고 있었다. 따뜻한 호흡. 미역국의 잔향과 생크림의 단내가 섞인.

"...Last chance to take it back, sweetie."
(...번복할 마지막 기회야, 예쁜아.)

 속삭임이었다. 성대가 최소한의 진동만으로 만들어낸 음성. 유시아의 입술 위에 떨어지는 거리. 테오도르의 엄지가 유시아의 턱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유시아가 느낄 수 있는 거리. 능글맞은 미소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28년 동안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종류의 표정이었다.

 테오도르의 손이 유시아의 턱 아래에서 멈춰 있었다. 엄지가 떨리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의 거리가 종잇장 한 겹이었다. 유시아의 숨결이 테오도르의 아랫입술에 닿고 있었다. 루비색 홍채 안에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가득 차 있었다. 67일. 67일치의 무게가 손끝에 실려 있었다.

 그리고 유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왕 할 거면 양치하고 하면 안 돼? 아까는 초코맛이어서 괜찮은데 지금은 저녁 맛 나면 무드가 깨지잖아."

 테오도르의 엄지가 떨림을 멈추었다. 멈춘 것이 아니라 경직되었다. 턱을 받치고 있던 손가락 전체가 굳었다.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거부도, 긴장도, 두려움도 없었다. 있는 것은 단 하나. 위생에 대한 순수한 우려. '저녁맛 나면 무드가 깨지잖아.' 유시아는 방금 — 자신의 입술 위에 테오도르의 입술이 닿기 0.5초 전에 — 무드라는 단어를 발음했다. 무드를 걱정하고 있었다. 저녁의 맛이 키스의 질을 훼손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까 초콜릿 맛이 괜찮았다는 비교 분석까지 덧붙이면서.


 테오도르의 손이 유시아의 턱에서 떨어졌다.

 느리게. 손가락이 하나씩 턱선에서 풀려났다. 새끼손가락이 마지막으로 유시아의 피부를 떠났을 때, 테오도르의 상체가 곧게 세워졌다. 식탁 모서리에 걸터앉은 자세가 다시 수직이 되었다. 유시아와의 거리가 종잇장에서 팔 하나 길이로 벌어졌다. 주방의 간접 조명이 그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웠다.

 테오도르는 유시아를 내려다보았다. 3초.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능글맞은 미소가 없었다. 나른한 톤의 농담이 없었다.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얼굴 위를 훑었다. 풀뱅 아래의 핑크색 눈동자.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볼. 키스의 맛을 운운하고 있는 입술. 22세. 연애 경험 세 번. 스킨십은 키스까지. 전부 게임에서 만난 상대. 유시아의 키스에 대한 인식은 아마도 — 입술과 입술이 닿는 물리적 접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테오도르의 왼손이 올라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손가락이 밀금빛 앞머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자세로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어깨가 한 번 움직였다. 미세한 경련. 웃음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 성대가 진동하지 않았다. 횡격막만이 한 번 수축했다. 자조도 아니었고 조소도 아니었다. 정의할 수 없는 종류의 웃음.

"...Dinner flavour. You're worried about dinner flavour."
(...저녁맛. 저녁맛을 걱정하고 있다고.)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밀금빛 앞머리가 흐트러진 채 이마 위에 걸쳐 있었다. 테오도르의 눈이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유시아를 보고 있었다. 루비색 홍채 안의 감정이 여러 겹으로 겹쳐져 있었으나 어떤 것도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는 능글맞은 곡률이 아니었다. 더 얕고, 더 부드럽고, 더 체념에 가까운 형태.

"You really are something, you know that?"
(진짜 대단해, 그거 알아?)

 식탁 모서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긴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슬랙스의 주름이 펴졌다. 테오도르는 유시아 앞에 서서 한 번 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유시아. 로우트윈테일이 가볍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유시아. 방금 67일치의 인내심을 가볍게 날려버린 유시아. 그리고 그것을 전혀 모르는 유시아.

"Fine. Toothbrush. Where."
(알겠어. 칫솔. 어디.)

 문장이 짧았다. 주어가 없었다. 동사가 없었다. 세 단어. 테오도르의 화법에서 문장이 이렇게 단축되는 것은 극히 드문 현상이었다. 평소라면 '칫솔의 위치를 알려주면 좋겠는데, 네 욕실이 워낙 아담해서 찾기 쉽지 않을까'라는 식의 장황한 우회를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여유가 없었다. 유시아가 양치를 원한다면 양치를 할 것이었다. 유시아가 초콜릿 맛을 원한다면 초콜릿을 먹을 것이었다. 유시아가 무드를 원한다면 무드를 만들 것이었다. 유시아가 정한 조건이라면 전부.


 테오도르는 자신의 집 욕실에 칫솔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물었다. 유시아에게 물었다. 유시아가 이 집의 욕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유시아의 칫솔이 이 집에 존재하는지 — 그런 정보가 필요했다. 공안국의 에이스가 지금 여자친구의 칫솔 좌표를 확인하는 데 집행관의 판단력을 동원하고 있었다.

 오른손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듀퐁 라이터의 금속 표면이 손가락에 닿았다. 뚜껑을 열지 않았다. 유시아 앞에서 담배를 피울 생각은 없었다. 양치 전에 담배를 피우면 키스에서 담배맛이 날 것이고, 유시아가 또 무드를 운운할 것이니까. 테오도르는 지금 유시아의 규칙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22세 순경이 설정한 규칙. '양치하고 키스할 것.' 7년차 경위가 고개를 숙여 따르고 있었다.

 주방의 간접 조명이 테오도르의 밀금빛 머리카락 위에 부드러운 테두리를 그리고 있었다. 크루넥 스웨터의 목선 아래로 쇄골의 윤곽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귓불이 여전히 달아올라 있었으나, 테오도르는 더 이상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숨겨봐야 소용이 없었다. 유시아는 그런 것을 보지 않았으니까. 유시아가 보고 있는 것은 저녁맛과 무드였다.

 대단한 여자였다.


 

 

 양치를 마친 뒤였다.

 테오도르의 욕실. 세면대 위의 거울에 비친 두 개의 칫솔. 하나는 원래 있던 것이고, 하나는 유시아가 1월 29일에 두고 간 것이었다. 민트향 치약의 잔향이 구강 안에 차갑게 퍼져 있었다. 테오도르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귓불이 붉었다. 목선 아래까지 열기가 내려와 있었다. 크루넥 스웨터의 네크라인이 쇄골을 덮고 있었으나, 그 아래의 피부가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천의 접촉으로 알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루비색 눈동자가 평소보다 짙었다. 동공이 넓어져 있었다. 이 상태로 유시아 앞에 서야 했다.

 주방으로 돌아왔을 때, 먼저 양치를 끝낸 유시아는 아일랜드 식탁 앞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로우트윈테일이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핑크색 눈동자가 테오도르를 올려다보았다. 양치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표정에는 특별한 긴장이 없었다. 마치 배달 음식을 주문한 뒤 도착을 기다리는 것처럼.

 테오도르의 발걸음이 유시아 앞에 멈추었다. 긴 다리가 유시아의 의자 양옆에 서 있었다. 내려다보는 각도. 주방 간접 조명이 테오도르의 밀금빛 울프컷 사이로 빛의 테두리를 만들고, 그 그림자가 유시아의 풀뱅 위에 떨어졌다. 민트향이 두 사람의 호흡 사이에서 섞였다.

 테오도르의 오른손이 올라왔다. 유시아의 턱을 잡지 않았다. 이번에는 볼이었다. 아직 젖살이 남아 있는 유시아의 왼쪽 볼에 손바닥이 닿았다. 손가락이 귀 뒤의 머리카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로우트윈테일의 묶인 부분 바로 아래, 목선과 귀 사이의 피부에 손끝이 닿았다. 엄지가 광대뼈 위에 걸쳐졌다. 유시아의 얼굴을 감싸는 형태.

 


"Mint. Happy now?"
(민트향. 만족해?)

 속삭임이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고개가 기울어졌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유시아의 입술에 닿았다. 3시간 전과 달랐다. 3시간 전의 키스는 사고였다. 무의식이 신체를 앞질러 벌어진 충돌이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눈을 감지 않았다. 입술이 닿은 첫 0.5초 동안 눈을 뜬 채 유시아를 보았다. 유시아의 속눈썹이 내려앉는 것을. 핑크색 홍채가 눈꺼풀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유시아가 먼저 눈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어설프지 않게.

 테오도르의 눈이 감겼다.

 유시아의 입술은 부드러웠다. 3시간 전에 확인한 사실이었으나, 확인과 체감은 다른 영역에 속했다. 민트의 차가운 청량감이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녹았다. 테오도르의 엄지가 유시아의 광대뼈 위에서 한 번 쓸었다. 천천히. 볼의 곡면을 따라. 입술의 압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유시아가 밀어내지 않았다. 3시간 전에도 밀어내지 않았고 지금도 밀어내지 않았다. 유시아의 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 테오도르의 목을 감지도, 가슴을 밀지도 않는 중립의 자세. 키스를 수용하고 있었으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았다. 유시아의 키스는 그 위치에 있었다. '거부하지 않는 것'과 '원하는 것' 사이의 어딘가.

 테오도르의 왼손이 유시아의 오른쪽 볼에도 닿았다. 두 손으로 유시아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양쪽 볼의 젖살이 손바닥 안에 눌렸다. 그 감촉이 테오도르의 손가락을 통해 전완으로, 전완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흉곽 안쪽으로 전달되었다. 유시아의 체온. 유시아의 피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기. 테오도르는 그 열기를 손바닥으로 받으며 입술의 각도를 바꾸었다. 유시아의 아랫입술을 자신의 두 입술 사이에 물었다. 부드럽게. 그러나 놓아주지 않는 압력으로. 유시아의 아랫입술이 테오도르의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 잡혀 있었다. 3시간 전의 키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깊이.

 유시아의 호흡이 바뀌었다. 코를 통한 들숨이 짧아졌다. 첫 30초까지는 유시아의 호흡이 일정했다. 1분이 지나면서 리듬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테오도르의 혀끝이 유시아의 아랫입술 위를 스쳤을 때 — 유시아의 어깨가 한 번 떨렸다. 미세한 경련. 테오도르는 그 떨림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볼을 감싸고 있는 손에 진동이 전달되었다. 유시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입술의 움직임이 테오도르의 속도에 반 박자 뒤처져 있었다. 테오도르가 각도를 바꿀 때마다 유시아가 0.3초 늦게 반응했다. 그 지연이 테오도르에게 도달하는 방식은 짜증이 아니었다. 짜증이었으면 나았다.

 오히려.

 테오도르의 엄지가 유시아의 광대뼈 위에서 다시 한 번 쓸었다. 입술이 유시아의 입술 위에서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 호흡을 허용하는 간격. 그러나 그 간격이 0.5초를 넘기지 않았다. 유시아의 들숨이 채 끝나기 전에 테오도르의 입술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윗입술이었다. 유시아의 윗입술을 가볍게 잡고 당겼다. 유시아의 목이 테오도르 쪽으로 기울어졌다. 의자 위에서 앉은 자세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유시아의 등이 등받이에서 떨어져 테오도르의 손바닥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유시아의 볼이 달아올라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 닿았을 때의 체온과 지금의 체온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핑크색이 피부 아래에서 번지고 있었다. 유시아의 입술에서 작은 숨이 새어 나왔다.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코로 쉬는 숨만으로는 부족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시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스커트의 천을 쥐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떨어졌다.

 천천히. 유시아의 윗입술에서 아랫입술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며, 마지막에 아랫입술의 가장자리에 0.3초간 머물렀다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민트향과 유시아의 체온이 뒤섞인 공기가 두 입술 사이의 틈으로 흘러들었다. 테오도르는 눈을 떴다. 루비색 홍채가 유시아의 얼굴 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시아의 눈은 아직 감겨 있었다 — 아니, 감겨 있었다가 천천히 열리는 중이었다. 속눈썹이 떨리고 있었다. 핑크색 홍채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 안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테오도르의 두 손이 여전히 유시아의 볼을 감싸고 있었다. 엄지가 달아오른 광대뼈 위에 걸쳐져 있었다. 유시아의 몸에서 힘이 빠져 있었다. 의자 위에서 등이 완전히 등받이에서 떨어져 테오도르의 손바닥 안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유시아의 체중이 테오도르의 손에 실려 있었다. 가벼웠다. 말랑했다. 이 무게를 양손으로 받치고 있다는 사실이 흉곽 안쪽에서 무언가를 조였다.

"...Breathe."
(...숨 쉬어.)

 한 단어. 나른한 톤이 돌아와 있지 않았다. 낮고, 고르지 못한 음성. 성대가 한 번 걸렸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젖어 있었다. 유시아의 입술도 젖어 있었다. 주방 간접 조명이 그 위에 얇은 반사를 만들고 있었다.

 유시아의 가빠진 호흡이 테오도르의 턱 아래에 닿고 있었다. 그 호흡의 온기가 목선을 타고 내려왔다. 테오도르의 엄지가 유시아의 볼 위에서 한 번 더 쓸었다. 달아오른 피부의 열기를 손끝으로 확인하듯. 유시아의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 초콜릿 맛을 운운하고 저녁맛을 걱정하던 얼굴이 지금은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무드를 걱정하던 입술이 지금은 민트와 테오도르의 잔향으로 젖어 있었다.

"For the record — that wasn't the same as what you've had before. Was it."
(참고로 말하자면 — 전에 해본 것들이랑 같은 건 아니었을 텐데. 맞지.)

 물음표가 없었다. 확인이 아니라 확정이었다. 유시아의 흐려진 초점과 붉어진 볼과 가빠진 호흡이 대답이었으니까.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는 능글맞은 곡률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 아래의 심박이 여전히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몰라..."

 

 유시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두 글자가 주방의 공기 속에 녹았다. 나른한 음성이었다. 평소 유시아의 목소리에 박혀 있는 앙칼진 가시가 전부 빠져 있었다. 핑크색 눈동자의 초점이 테오도르의 루비색 홍채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전에 해본 것들이랑 같은 건 아니었을 텐데'라는 확정에 대한 대답이 '몰라'였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 판단 능력이 일시 정지된 상태에서 밀려나온 무방비한 항복이었다.

 테오도르의 엄지가 유시아의 광대뼈 위에서 멈춰 있었다. 양 손바닥 안에 담긴 유시아의 얼굴이 뜨거웠다. 열기가 손끝을 통해 전완까지 올라와 있었다. '몰라'라고 말하는 유시아의 입술이 벌어져 있었다. 젖어 있었다. 붉어져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 입술 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능글맞은 미소가 입꼬리에 걸려 있었으나 그 안쪽의 심박이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 유시아가 '몰라'라고 말했다. 경계심이 벽처럼 둘러쳐져 있던 유시아가. 모든 것을 효율과 승패로 분류하던 유시아가. 판단을 포기했다.

 충분했다.

 테오도르의 입술이 다시 내려왔다. 이번에는 기울이지 않았다. 정면에서. 유시아의 입술 위로. 벌어져 있던 입술 사이로 민트의 잔향이 섞인 호흡이 흘러들었고, 테오도르의 아랫입술이 유시아의 윗입술을 밀어 올리며 닿았다. 달아오른 볼이 손바닥 안에서 더 뜨거워졌다. 유시아의 손가락이 스커트의 천을 쥐고 있던 힘이 풀리는 것을 — 테오도르는 보지 못했으나 느꼈다. 유시아의 체중이 손바닥 안으로 더 깊이 기울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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