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Looks like it's your lucky day.
몇 달. 레퀴엠 필드에서 시간의 흐름은 외부 세계와는 다른 밀도를 가졌다. 10월은 11월에 자리를 내주었고, 카페테리아 벽면 스크린의 시뮬레이션은 이제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흩날리는 눈을 보여주었다. 본부 복도를 채우는 공기는 날카로워졌고, 방탄 조끼 아래로 스미는 한기는 전투복 섬유의 직조까지 느껴질 만큼 선명했다. 그 몇 달 동안, 유시아와 테오도르는 수많은 좌표를 거쳤다. 도쿄의 네온사인이 번지는 뒷골목, 카이로의 먼지 자욱한 시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얼어붙은 운하. CODE YELLOW, 때로는 RED. 유스티티아의 판결은 멈추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 판결의 가장 날카로운 끝이 되어 세계를 가로질렀다.
그들의 루틴은 이제 몸에 새겨진 문신처럼 익숙해졌다. 임무, 복귀, 장비 반납, 그리고 2층 카페테리아. 테오도르의 더블 에스프레소와 유시아의 밀크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가시와 장난기가 아슬아슬하게 뒤섞인 대화. 테오도르의 시선은 더 이상 유시아를 탐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관찰했다. 열 번째 임무에서 대상자의 어린 아들이 울음을 터뜨렸을 때 유시아의 입술이 1초간 굳었던 것을. 열세 번째 임무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시애틀의 부두에서 저스티카를 겨누었을 때 그녀의 핑크색 눈동자에 빗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고였던 순간을. 그는 그 모든 미세한 균열들을, 자신만의 서류철에 기록하듯 빠짐없이 담아두었다.
유시아의 플러팅은 점점 더 대담하고 뻔뻔해졌다. 이제 그녀는 테오도르의 능글맞은 칭찬을 정면으로 받아치거나, 오히려 한 수 위의 농담으로 그의 허를 찔렀다. "Handsome French man"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날은 그의 전투복 어깨에 붙은 먼지를 떼어주는 척하며 귓가에 "Is this part of the service too, sweetie?" 라고 속삭였고, 테오도르는 그 순간 0.7초 동안 호흡을 멈추었다. 그의 심장이 갈비뼈를 치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종류의 것이었기를 바라면서, 그는 평소의 미소를 되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들의 관계는 친밀해졌지만, 그 친밀함은 안전한 땅이 아니었다. 서로의 경계선을 밟고 아슬아슬하게 춤을 추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얼음판 위와 같았다.*
그리고 열일곱 번째 임무가 끝난 날, 루틴이 깨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카페테리아가 문을 닫았다. 정기 소독. 스테인리스 카운터는 텅 비어 있었고, 검은 가죽 부스에는 출입 금지 홀로그램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격납고에서부터 카페테리아까지, 거의 반사적으로 이어진 동선이 막다른 길에 부딪히자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테오도르가 먼저 등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평소의 나른한 농담이 아니었다.
"My place. I think I have something that isn't instant coffee."
(우리 집으로.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게 있을 거야.)
레퀴엠 필드의 주택 단지는 유령 도시처럼 고요했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새하얀 외벽, 기하학적인 창문, 현관문 옆에 달린 검은 홍채 인식 스캐너. 테오도르가 자신의 집 문 앞에 섰다. 스캐너의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훑자, 유스티티아의 미성이 건조하게 울렸다. 'Théodore Noir. Public Security Bureau, Criminal Division 1, Lieutenant. Access granted.'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안에서부터 따뜻한 조명과 희미한 향 냄새가 흘러나왔다.
내부는 그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모노톤의 기본 인테리어 위에, 그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체스터필드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그가 읽다 만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어 원서 시집이 펼쳐져 있었다. 벽 한쪽에는 펜싱 검 여러 자루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통창 너머로는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레퀴엠 필드의 황혼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창가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가 평소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자리였다.
테오도르는 전투복 자켓을 벗어 소파 팔걸이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화이트 컴프레션 셔츠가 그의 넓은 어깨와 슬렌더한 상체 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가 주방으로 향하며 찬장을 열었다. 예상대로, 커피 원두는 없었다. 대신 구석에서 낯선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지만 열어본 적도 없는, 고급 홍차 세트.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꺼내 들었다.
"Looks like it's your lucky day. No coffee for me either."
(네 운이 좋은 날인가 보네. 나도 커피는 없어.)
전기 포트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창가 테이블에 기대어 서서 저스티카를 홀스터에서 꺼냈다. 익숙한 손길로 탄창을 분리하고,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을 확인했다. 총기 손질용 천으로 매끄러운 총열을 닦아내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은 기계적일 만큼 정확했다. 방아쇠에 달린 작은 십자가 챰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유스티티아와의 연결고리. 집행관의 족쇄. 그는 총구 안쪽의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생명이 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빛으로 폭발했다. 그는 그 광경에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이 편안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찻잔 두 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테오도르가 유시아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카페테리아의 부스보다 가까운 거리. 무릎이 닿을 듯 말 듯한 간격.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 너머로 보이는 유시아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찻잔을 들지 않고, 대신 테이블 위에 양 팔꿈치를 올리고 깍지를 꼈다. 그의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핑크색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장난기도, 유혹도 없는,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종류의 시선이었다.
"It's different here, isn't it? No system announcements, no smell of disinfectant. You can almost pretend you're a person."
(여긴 다르지, 안 그래? 시스템 안내 방송도 없고, 소독약 냄새도 안 나. 사람이 된 척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야.)
말끝이 흐려졌다. 자조적인 어조. 그의 시선이 통창 너머로 펼쳐진 레퀴엠 필드의 기괴한 풍경으로 향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검은 첨탑들, 비현실적인 색감의 하늘. 이 안락한 집과 저 바깥의 풍경 사이의 간극이, 마치 그 자신의 내면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시 유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깍지 낀 손가락 중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다른 손가락의 마디를 매만지고 있었다.
"I've never brought anyone from the Bureau here before."
(공안국 사람을 여기 데려온 건 처음이야.)
사실이었다. 동료도, 파트너도, 하룻밤 상대도 아니었다. 이 공간은 테오도르 누아르라는 인간이 유일하게 갑옷을 벗어둘 수 있는 장소였고, 그는 그곳에 타인을 들이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앎이, 그의 목 안쪽을 건조하게 만들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평소의 미소를 입가에 걸어보려 했지만 어색하게 실패했다.
찻잔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물이 끓는 소리가 멈춘 뒤 찾아온 정적을, 머릿속을 직접 강타하는 유스티티아의 기계적인 미성이 산산조각 냈다. `CODE RED`. 그 붉은 낙인이 망막 위에서 점멸하는 순간, 테오도르의 집 안을 채우고 있던 희미한 온기와 향 냄새가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니, 공기는 그대로였지만 테오도르라는 인간이 발산하는 온도가 급강하했다. 그의 동공에서 방금 전까지 유시아를 담고 있던 부드러운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냉혹한 루비의 경도가 들어찼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망막 위로 동시에 붉은 홀로그램이 점멸했다.
| [CODE RED: IMMINENT THREAT DETECTED] [TARGET: UNIDENTIFIED. HOSTILE INTENT CONFIRMED] |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그의 손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저스티카를 향해 뻗는 손길은, 조금 전 총기를 손질하던 나른한 움직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정확성을 가졌다. 금속을 낚아채는 손아귀에 실린 힘이, 찻잔을 든 채 굳어 있던 유시아의 귓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유시아를 향하지 않았다. 유시아를 처음으로 들인 바로 그날, 감히 발을 들인 불청객.
분노. 그것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웠다. 평소의 나른한 미소와 장난기 어린 말투는 그 차가움 아래 겹겹이 묻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나온 것은 ‘sweetie’도, 농담도 아니었다.
"Gear up. Now."
(장비 챙겨. 지금 당장.)
명령이었다. 건조하고, 단호하며, 그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목소리.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컴프레션 셔츠 위로 전투복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지퍼를 올리는 금속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유스티티아의 계시는 아직 타겟의 정확한 신상을 특정하지 못했다. ‘UNIDENTIFIED’. 그러나 ‘HOSTILE INTENT CONFIRMED’라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것은 더 이상 대화나 협상의 영역이 아니었다. 사냥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 나폴리. 스파카나폴리의 미로 같은 골목 깊숙한 곳. 안도할 틈도 없었다. 포탈 게이트가 열리는 특유의 공간 왜곡 현상이 거실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테오도르는 게이트의 푸른 소용돌이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가, 문득 멈춰 서서 유시아를 돌아보았다. 그의 루비색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복잡한 감정의 파편들이었다. 안도, 그리고 그 안도를 느낀 자신에 대한 혐오, 그리고 눈앞의 신입을 이 지옥으로 또다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 그의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저, 고갯짓으로 게이트를 가리켰을 뿐이다.
나폴리의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소금기와 오래된 석조건물의 퀴퀴한 냄새, 그리고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비릿함이 뒤섞여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쓰레기통이 나뒹구는 좁은 골목의 막다른 곳이었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음과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가 도시의 신경질적인 심장 박동처럼 울렸다. 망막 위의 HUD는 붉은 빛을 뿜으며 타겟 정보를 갱신했다. 리카르도 모레티. 카모라 조직의 중간 보스. 신종 합성 마약 유통의 핵심 인물. 그리고 그의 현재 위치는, 이 골목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버려진 성당 안이었다.

"This is not a YELLOW, SiA. There's no negotiation. No hesitation. The moment you have a clean shot, you take it. Understood?"
(이건 옐로우가 아니야, 시아. 협상도, 망설임도 없어. 깨끗한 각이 나오는 즉시 쏴. 알겠어?)
테오도르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그는 이미 골목 벽에 등을 붙인 채, 저스티카의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강제로 해제하는 서늘한 금속 마찰음. 그의 시선은 유시아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갔다. 첫 사살 임무. 그녀가 이 압박감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할 여유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오직 임무만이 존재했다. 그는 손짓으로 유시아에게 자신의 뒤를 따르라는 신호를 보내고, 소리 없이 성당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당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과, 제단 위에 켜놓은 수십 개의 촛불로 기묘하게 밝았다. 먼지 쌓인 장의자들 사이로, 리카르도 모레티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단 앞에 놓인 작은 가방을 열고,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입구 쪽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수신호를 보냈다. 자신이 정면으로, 유시아는 2층의 낡은 성가대석으로. 교차 사격 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유시아가 소리 없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확인한 뒤, 테오도르는 숨을 골랐다.
그가 그림자 밖으로 나서며 저스티카를 겨누는 순간,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리카르도 모레티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함정이었다. 그의 손이 가방 안의 버튼을 누르자, 성당의 모든 문이 육중한 굉음과 함께 동시에 닫혔다. 그리고 장의자들 뒤에 숨어 있던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소총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총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테오도르가 가장 가까운 돌기둥 뒤로 몸을 날렸다. 기둥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HUD 위로 수십 개의 위협 경고가 붉게 점멸했다. 이 정도 규모의 매복은 유스티티아의 예측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시스템은 리카르도 모레티 한 명만을 타겟으로 지정했을 뿐, 그의 조직 전체를 위험 요소로 계산하지 않았다. 오류. 치명적인 오류였다.
"SIA! STATUS!"
(시아! 상태 보고해!)
그가 고함을 지르며 기둥 뒤에서 응사했다. 저스티카가 불을 뿜을 때마다, 특수 광원에 맞은 조직원의 몸이 붉은 안개처럼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층에서 유시아의 저스티카가 불을 뿜는 것이 보였다. 프로게이머 시절의 반사신경은 여전했다. 그녀는 정확하게 머리를 노려 한 명씩 쓰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총탄 몇 발이 그녀가 숨은 낡은 나무 난간을 스치며 파편을 튀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2층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바깥에서부터 박살 나며 새로운 적들이 밧줄을 타고 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유시아의 바로 뒤쪽이었다. 그녀는 정면의 적들에게 집중하느라 배후를 눈치채지 못했다. 테오도르의 눈에 그 광경이 슬로우 모션처럼 들어왔다. 밧줄에서 뛰어내린 남자가 유시아의 등 뒤로 접근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채는 모습이.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비명.
테오도르의 세상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빗발치는 총성도, 동료들의 고함도, 유스티티아의 경고음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의 심장이 귀 바로 옆에서 미친 듯이 울리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조직원의 손에 붙들려 낡은 나무 난간 너머로 위태롭게 내던져지는 유시아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 잠시 떴다가, 중력에 이끌려 1층의 대리석 바닥을 향해—아무런 저항도 없이 추락했다.
추락. 둔탁한 충격음.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를 태웠다. 유기 공포. 그러나 이번에는 버려지는 쪽이 아니었다. 버려지게 만든 쪽이었다. 자신이 그녀를 그곳으로 보냈다. 자신이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다. 자신이.
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상처 입은 짐승의 것에 가까운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는 더 이상 기둥 뒤에 숨지 않았다. 쏟아지는 총탄을 향해 정면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저스티카가 기계적인 속도로 불을 뿜었다. 타겟, 사살. 타겟, 사살. HUD의 행동 예측 잔상 따위는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눈앞의 모든 움직이는 것을 지워버리겠다는 순수한 살의만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붉은 안개가 성당 안을 가득 채웠다. 촛불이 꺼지고, 피와 화약 냄새가 신성 모독처럼 공간을 더럽혔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성당 안에는 테오도르와 리카르도 모레티,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유시아만이 남아 있었다. 리카르도는 제단 앞에 주저앉아 공포에 질린 눈으로 테오도르를 보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유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전투복은 찢겨 있었고, 하얀 피부 위로 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 부러진 팔은 기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얕게 오르내리는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너덜너덜해진 몸. 그 단어가 테오도르의 머릿속을 망치처럼 내리쳤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려다, 자신의 손에 묻은 피와 화약을 보고 멈칫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절대적인 사법 시스템 유스티티아 앞에서,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가 그녀의 곁에 있었어야 했다. 그가 그녀를 지켰어야 했다. 그가 세웠던 모든 벽과, 유지했던 모든 거리와, 즐겼던 모든 게임이, 이 붉은 참상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그의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불안의 첫 신호였다.
의무실의 천장은 공안국 본부의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하얗다. 빛이 아니라 빛의 부재가 만들어낸 흰색. 형광등이 아닌 의료용 무영등의 차가운 광원이 방 전체를 고르게 적시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모든 것은 그림자를 잃었다. 수술실에서 올라온 소독약과 지혈제의 냄새가 공기 중에 단단히 굳어 있었고, 침대 옆 생체 모니터가 내뿜는 규칙적인 전자음만이 시간의 흐름을 증명했다. 삐, 삐, 삐. 심박수 68. 안정 구간. 그 숫자가 테오도르의 망막 위에 떠 있었다. 72시간 전부터.
테오도르 누아르는 의무실 창가의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전투복 자켓은 벗겨진 채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고, 화이트 컴프레션 셔츠의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왼쪽 전완의 얕은 찰과상에 붙은 거즈는 갈아야 할 시기가 지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왼손은—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의식적인 동작. 72시간 동안 반복된 횟수를 세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루비색 눈동자는 유시아의 얼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잠든 얼굴. 하얀 피부 위로 멍이 번진 자국, 목과 어깨를 감싼 붕대, 부목으로 고정된 팔. 그 광경을 처음 마주한 수술 직후의 순간이 가시처럼 기억 속에 박혀 있었다.
나폴리의 성당에서 유시아를 안아 올렸을 때, 그의 팔 안에 담긴 무게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마르고 말랑한 몸이 피와 먼지와 콘크리트 가루에 뒤덮여 있었고, 풀뱅 아래로 드러난 감긴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 그 떨림을 확인한 순간 테오도르의 무릎이 풀렸고,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안은 채 일어서는 데 온 힘을 써야 했다. 포탈 게이트를 통과하는 동안 그의 심박수는 142를 찍었다. 유스티티아의 미성이 비정상적 생체 반응을 경고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의무실에 유시아를 넘기고 수술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듀퐁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가 껐다. 붙였다가 껐다. 그것을 열일곱 번 반복했다.
수술은 성공했다. 집도한 메딕이 "골절 정복 완료, 열상 봉합 완료, 내출혈 없음"이라고 보고했을 때, 테오도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접이식 의자를 펴서 유시아의 침대 옆에 놓고 앉았다. 그 뒤로 72시간. 그는 보고서를 썼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돌아왔고, 에스프레소를 가져와 식힌 채 마셨다. 잠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잤다. 등이 뻣뻣해졌고 목이 굳었지만, 자리를 비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대답해야 하니까.
그리고 유시아가 눈을 떴다. 핑크색 눈동자가 무영등의 백색광에 적응하느라 가늘어졌다가 천천히 초점을 찾았고, 그 초점이 테오도르의 얼굴 위에 멈추었다. 테오도르의 왼손이 귀에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그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준비해 두었던 말이 있었다. '괜찮아?' 혹은 '일어났어?' 혹은 '겁 줬잖아, 자기.' 그 중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루비색 눈동자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가—평소의 나른한 곡선을 되찾으려는 듯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유시아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밥.
밥이 맛없다.
퇴원시켜 달라.

테오도르의 어깨에서 72시간 동안 쌓여 있던 긴장이, 마치 실이 끊어지듯 한꺼번에 풀렸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등이 의자 등받이 쪽으로 무너지며 가죽이 삐걱거렸다. 그의 오른손이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웃음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떨림. 그 떨림이 어깨까지 번졌다가, 결국 짧은 호흡으로 변환되어 빠져나왔다.
"...You've been unconscious for three days, half your bones were held together with surgical wire, and the first thing out of your mouth is a complaint about the food."
(...3일 동안 의식이 없었고, 뼈 절반이 수술용 와이어로 겨우 붙어 있는데,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밥 불만이야.)
손을 내리며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루비색 눈동자의 표면에 서려 있던 72시간의 무게가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그 위로 익숙한 장난기가 겹쳐졌다. 얇은 막처럼. 그의 시선이 유시아의 붕대 감긴 팔과, 멍이 번진 목선과, 그 위로 아무렇지 않은 듯 올려진 뻔뻔한 표정 사이를 오갔다. 깨진 인형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그 인형이 눈을 떠 투덜거리는 비현실적인 광경.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이번에는 어색하지 않았다.
"No, I'm not pulling strings for your early discharge. You're staying right here until the medics say otherwise. That's not negotiable, sweetie."
(아니, 네 조기 퇴원에 힘 안 써. 메딕이 된다고 할 때까지 여기 있어. 이건 협상 불가야, 자기.)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뻣뻣한 등과 목이 항의하듯 소리를 냈지만 무시했다. 침대 옆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유시아의 베개 옆에 놓인 물컵의 위치를 확인했다. 빨대가 꽂혀 있었다. 72시간 전, 메딕이 "환자가 깨면 물부터 마시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테오도르가 직접 꽂아둔 것이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물컵을 잡아 유시아의 입 쪽으로 기울였다. 숙련된 동작은 아니었다. 각도를 두 번 조정해야 했고, 빨대 끝이 유시아의 입술을 찾는 데 0.5초가 걸렸다.
"But I suppose I could bring you something from outside. If you ask nicely."
(근데 뭐, 밖에서 뭐 좀 사다 줄 수는 있겠지. 예쁘게 부탁하면.)
물컵을 내려놓으며 유시아의 이마 위로 흐트러진 백금발 머리카락 한 올이 눈 위에 걸쳐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이 반사적으로 뻗어 그것을 옆으로 쓸어 넘기려다가—손끝이 유시아의 이마에 닿기 직전, 멈추었다. 0.3초의 정지. 그리고 손가락이 천천히 물러났다. 대신 자신의 귀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그 동작을 유시아가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그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의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레퀴엠 필드의 하늘은 짙은 남색이었다. 시간은 새벽에 가까웠다. 72시간. 이 좁은 의자 위에서 보낸 시간의 무게가, 유시아의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가벼워졌다가, 다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맛없는 밥. 퇴원.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그 포커페이스가—밀라노에서, 프라하에서, 리스본에서, 부다페스트에서, 그리고 나폴리에서 한 번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그 얼굴이—지금 이 순간, 테오도르의 가슴을 짓누르는 무언가의 정체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아직은.
빨대를 통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의무실의 정적 속에서 기묘하게 선명했다. 쪽, 쪽. 그 소리를 듣는 동안 테오도르의 시선은 유시아의 볼 위에 머물러 있었다. 빨대를 물 때마다 아직 빠지지 않은 볼살이 오므라들었다가 풀리는 움직임. 3일간 의식이 없었던 환자의 얼굴에서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그의 흉곽 안에서 무언가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양아치... 아픈 환자가 부탁하는데 예쁘게 부탁해달라니. 자기야, 공안국 밥이 얼마나 맛없는지 프랑스인인 네가 잘 알 거 아니야. 너무 각박한 거 아니야? 누가 매일 맛있는 밥 차려줬으면 좋겠다-"
'양아치.' 그 단어가 고막을 스쳤을 때,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사적으로. 72시간 동안 의자 위에서 굳어 있던 표정 근육이 되살아나는 감각. 그러나 곧이어 따라온 문장이—
'자기야.'

테오도르의 왼손이 귀로 향하던 궤적을 멈추고, 어색하게 턱 아래로 내려왔다. 목 뒤의 피부가 먼저 달아올랐다. 미세하게, 그러나 화이트 컴프레션 셔츠의 목선 위로 퍼지는 홍조를 완전히 숨기기에는 의무실의 무영등이 너무 밝았다. '자기야'라는 호칭은 그가 먼저 꺼내든 카드였다. 'sweetie', '자기', '예쁜아'—전부 그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것은 무기였다. 거리를 좁히면서도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숙련된 플레이보이의 연장. 그런데 그 무기가 유시아의 입에서 되돌아왔을 때—
질감이 달랐다. 같은 단어인데. 분명히 같은 단어인데.
테오도르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그 감각을 처리할 시간을 벌었다. 레퀴엠 필드의 새벽 하늘은 여전히 짙은 남색이었고, 주택 단지의 흰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다시 유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평소의 나른한 곡선을 되찾은 채.
"Did you just call me 'darling'? That's usually my line."
(지금 나한테 '자기야'라고 한 거야? 그건 보통 내 대사인데.)
목소리의 톤은 여유로웠지만, 끝이 평소보다 한 음 높았다. 0.5음. 유시아가 알아챌 수도, 못 챌 수도 있는 차이. 테오도르는 그 차이를 인지한 자신에게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유시아가 침대 헤드에 기댄 채 뻔뻔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붕대에 감긴 팔과, 멍이 번진 목과,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압박 붕대와, 그 모든 파손의 증거 위에 태연하게 올려진 장난기를—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프랑스인이니까 요리를 잘 할 거라는 추론. 근거 없는 국가적 편견. 그런데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You're lying in a hospital bed with a broken arm, surgical wire holding your ribs together, and bruises I haven't even finished counting—and your primary concern is the quality of the cuisine."
(부러진 팔에, 갈비뼈는 수술용 와이어로 겨우 붙어 있고, 아직 다 세지도 못한 멍투성이 상태로 병상에 누워서—네 최대 관심사가 밥맛이야.)
문장 끝에 한숨이 섞였다. 짧고 얕은 호흡. 그러나 그 한숨은 지친 것이 아니라, 항복에 가까운 종류였다. 그의 긴 손가락이 턱을 받치며 유시아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창가에서 스미는 새벽빛이 밀금빛 울프컷의 윤곽을 따라 흘러내렸고, 루비색 눈동자 안에 유시아의 얼굴이 작게 비쳤다.

"I never said I'd cook for you. But I never said I wouldn't, either."
(요리해주겠다고 한 적 없어. 근데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
여지를 남기는 화법. 그의 특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대가 원하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공간을 열어두는 방식. 그러나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전투복 자켓 주머니를 뒤지는 손길은,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의 것이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담배가 아니라 단말기였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훑었다. 무엇을 검색하는 것인지 유시아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Any allergies I should know about? Or are you the type who eats anything as long as it's not hospital food?"
(알레르기 같은 거 있어? 아니면 병원 밥만 아니면 다 먹는 타입?)
물음의 형태를 빌렸지만 그의 눈은 이미 단말기 너머에 있었다. 검색 결과를 훑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한 번 핥았다.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레시피를 확인하는 동작이었다. 프랑스인이니까 요리를 잘 할 것이라는 유시아의 추측은, 실은 절반만 맞았다. 테오도르 누아르는 요리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배운' 사람이었다. 정서적 교류가 부재한 유년기에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었던 영역. 재료의 무게를 달고, 온도를 맞추고, 시간을 재는 행위.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정밀함의 영역이었고, 그렇기에 어린 테오도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낀 행위였다. 그 사실을 유시아는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테오도르가 유시아의 침대 옆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이번에는 물컵이 아니라, 침대 난간에 손을 올렸다. 금속 난간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고, 그 손과 유시아의 손 사이에는 이불 한 겹의 거리가 있었다.
"Fine. I'll make you something. But not because you asked. Because I refuse to let French cuisine be judged against whatever they're serving in this place."
(알았어. 뭐 좀 만들어 올게. 근데 네가 부탁해서가 아니라, 프랑스 요리가 여기 급식이랑 비교당하는 건 못 참겠으니까.)
변명이었다. 그리고 둘 다 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테오도르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고, 동시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저항선이기도 했다. 그는 침대 난간에서 손을 떼며 유시아의 얼굴을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환자복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뻔뻔한 표정. 볼살. 핑크색 눈동자의 장난기. 그 아래 감춰진—나폴리의 성당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던 순간의 잔상이 아직 테오도르의 망막 뒤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전투복 자켓을 집어 들며 출구를 향해 돌아섰다. 문고리에 손이 닿기 직전, 멈추었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등 너머로,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Get some rest. I'll be back before you have time to miss me."
(좀 자. 네가 나 그리워할 틈도 없이 올 테니까.)
문이 닫혔다. 의무실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생체 모니터의 전자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공간에, 프라다 향수의 잔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복도를 걸어가는 테오도르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빨랐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주머니 속에서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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