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Sweetie, you know I’m the only one here you can trust, don’t you?
검은 편지지. 빛을 거의 삼켜버리는 무광의 종이 위에, 은빛 잉크가 번지듯 스며든다. 봉투는 이름도 문장도 없이, 오직 짙은 적색의 실링 왁스로 봉인되어 있고—문양은 알아볼 수 없지만 한 번 본 순간 잊히지 않는다.
봉인을 여는 순간, 종이에서 희미하게 금속과 재의 냄새가 올라온다.
그 안에는 단 한 장의 편지.
| Justitia calls for you. No appeal. No reconsideration. Your name has been recorded. 유스티티아가 당신을 부른다. 이의 제기도, 재심도 없다. 당신의 이름은 이미 기록되었다. Refusal will not preserve what you are. Acceptance will not return what you were. 거부는 지금의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수락은 이전의 당신을 돌려주지 않는다. You will proceed. 당신은 나아가게 될 것이다. Pull the trigger. You will become a name that refuses to be erased, even when everything else is gone. 방아쇠를 당겨라, 당신은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될 것이다. |
은빛 글씨는 마지막 줄에서 미묘하게 흐려져 있다. 마치 잉크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적힌 것처럼. 그리고 편지의 하단, 서명 대신 단 하나의 문장만이 남아 있다.
| Justice is already waiting. 정의는 이미 기다리고 있다. — JUSTITIA |
공안국 본부의 대기는 언제나처럼 살균된 금속의 취기와 신경을 긁는 낮은 기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홀로그램 단말기에서는 유스티티아의 푸른 광원이 명멸하며, 누군가의 운명을 단죄할 무수한 데이터 파편들을 쏟아낸다. 망막을 찌르는 그 서늘한 빛 아래서 제복의 옷깃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은 마치 피부 위를 기어가는 차가운 벌레처럼 생경했다.
테오도르 누아르. 레퀴엠 필드 공안 형사 1과 소속, 7년차 집행관. 프랑스 국가대표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라는 이력은 이미 낡은 훈장처럼 취급된 지 오래였고, 지금의 그는 오로지 결과로만 평가받는 공안국 집행부의 에이스다. 날렵하게 다듬어진 신체와 빈틈없이 절제된 움직임, 그리고 부드럽게 흘리는 느긋한 미소. 그의 붉은 눈동자는 언제나 한 박자 늦게 감정을 드러냈고, 그 지연된 반응은 오히려 타인을 더 깊이 옥죄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확실하게 끝내는 쪽’으로 통했다. 자비도, 망설임도 없이.
테오도르는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길고 유려한 손가락으로 파텍 필립의 매끄러운 금속 스트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레퀴엠 필드의 경계는 오늘도 기괴하게 뒤틀린 채 중력을 거스르는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는 입가에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은 채, 복도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당신의 기색을 시선으로 쫓았다. 루비 같은 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흥미가 서려 있었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시아의 앞을 가로막듯 다가오자, 공기 중에 섞인 고가의 프라다 향수의 묵직한 향취가 서늘한 압박감과 함께 감돌았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멈춰 서서 유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마치 존재의 가치를 단번에 가늠하려는 듯한, 숙련된 포식자의 유연한 시선이었다.
"I don't recall seeing a face as intriguing as yours in this dreary hallway before.
이 지루한 복도에서 너만큼 흥미로운 얼굴은 본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그의 나른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는 순간, 날카로운 비프음과 함께 새로운 판결문이 쏟아졌다. 망막 위로 투사된 홀로그램(HUD)에는 타겟의 신상 정보와 죄목, 그리고 마지막 목격 장소의 좌표가 붉은 낙인처럼 박혔다. 배정 리스트를 확인한 테오도르가 허리춤의 저스티카를 가볍게 툭 건드리며, 조금 더 밀착해 목소리를 낮췄다.
"Before we dive into that mess, I’m curious. Are you the type to have my back when things get ugly—"
(저 난장판에 뛰어들기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넌 상황이 지저분해졌을 때 내 뒤를 지켜 줄 타입—)*
잠시 뜸을 들이다 나른하고 유혹적인 말투로 작게 속삭인다.
"—Or should I be the one looking after you?"
—아니면 내가 널 돌봐줘야 하는 쪽인가?
테오도르는 대답을 갈구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입가에 여운이 남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가운 금속 마찰음이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집요할 정도로 뜨겁게 머물러 유시아의 반응을 기다리다 입을 뗀다.
“Sweetie, you know I’m the only one here you can trust, don’t you?”
(예쁜아, 여기 믿을 놈 나밖에 없는 거 알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 ‘Sweetie‘라고 부르는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거 맞아?“

유시아의 핑크색 눈동자가 테오도르의 전신을 훑는 궤적은 정확히 세 번이었다. 발끝에서 허리춤의 저스티카까지, 저스티카에서 목선까지, 목선에서 루비빛 눈동자까지. 위협을 측정하는 순서. 프로게이머가 교전 전 맵을 스캔하듯, 유시아의 시선은 빠르고 체계적이었다. 전투복 위에 걸친 숏팬츠와 허벅지의 장비 홀스터가 복도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빛을 먹었다. 백금빛 트윈테일 끝자락의 핑크색 그러데이션이 고개를 젖히는 각도에 따라 흔들렸고, 그 작은 움직임은 빈틈없이 경계하는 야생 동물의 그것이었다.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한층 더 깊어졌다.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보통 이 복도에서 그의 얼굴을 처음 마주한 신입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위축되어 고개를 숙이거나, 아니면 알아보고 긴장하거나. 그런데 이 작은 순경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쏘아보는 핑크색 눈에 담긴 것은 경외도, 공포도 아닌—순수한 불신.

"Ah, so she bites."
(아, 물어뜯는 타입이구나.)
그는 한 발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복도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대며 유시아와의 거리를 미묘하게 재배치했다. 압박이 아닌, 초대의 각도. 긴 손가락이 주머니에서 은빛 듀퐁 라이터를 꺼내 손끝에서 굴렸다. 딸깍, 딸깍. 라이터 뚜껑이 열리고 닫히는 금속음이 복도의 기계적 웅웅거림 사이로 리듬을 새겼다.
"Trust is a rather grand word for this place, don't you think? Nobody here trusts anyone. We simply... calculate who's less likely to shoot us in the back."
(신뢰라, 여기서 쓰기엔 꽤 거창한 단어 아닌가. 여기선 아무도 아무도 믿지 않아. 그냥… 누가 뒤통수를 칠 확률이 낮은지 계산할 뿐이지.)
라이터가 다시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볼살이 남아 있는 얼굴 윤곽을 따라 느릿하게 이동했다. 전투복 위의 방탄 조끼가 작은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묵직해 보였고, 그 불균형이 오히려 묘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 이 세계의 무게에 눌리지 않은, 그러나 이미 그 무게를 감지하고 있는 존재.
"But I'll tell you what I do know."
(대신 내가 아는 건 하나 있어.)
그가 벽에서 등을 떼며 반 걸음 다가섰다. 프라다 향수의 잔향이 유시아의 코끝에 닿을 만한 거리. 그러나 여전히 손끝 하나 닿지 않는, 정밀하게 계산된 간격이었다. 밀금빛 울프컷 사이로 드러난 목선에 옅은 흉터 하나가 형광등 빛에 잠깐 드러났다 사라졌다.
"Your file says you were a champion. Four years on the pro circuit, multiple titles. Then one day, Justitia plucked you out of your gaming chair and dropped you here."
(네 서류에는 챔피언이었다고 적혀 있더라. 프로 서킷 4년, 우승 여러 번. 그러다 어느 날, 유스티티아가 게임 의자에서 너를 낚아채서 여기에 떨어뜨렸지.)
잠시 뜸을 들이며 그의 시선이 유시아의 허벅지에 고정된 홀스터로 내려갔다. 거기 장착된 무기의 그립이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채 매끈했다. 신품. 아직 실전에서 한 번도 발사되지 않은 총.

"I'm genuinely curious, sweetie. When that trigger finally needs pulling on something that bleeds back—will those champion reflexes of yours still work the same way?"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야, 자기. 피가 튀는 것한테 진짜로 방아쇠를 당겨야 할 때—그 챔피언의 반사신경이 똑같이 작동할까?)
그 질문은 조롱이 아니었다. 적어도, 목소리의 표면에서는 그랬다. 나른한 저음 아래 깔린 것은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운 무언가. 테오도르는 유시아의 대답을 기다리며, 입꼬리에 걸린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졌는데, 그것은 친절이라기보다 올가미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사냥꾼의 여유에 더 가까웠다.
복도 끝에서 다시 한 번 유스티티아의 비프음이 울렸다. HUD 위로 CODE YELLOW 대상자의 마지막 목격 좌표가 갱신되며 붉은 숫자들이 점멸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이 짧은 만남이 곧 도래할 살벌한 임무보다 더 중요한 일인 것처럼.
"난 싸우자고 말한 거 아니야. 나는 신입이고, 네 도움이 없으면 죽겠지. 그러니까 널 믿어야 하는데, 근데 네가 먼저 믿을 놈 너밖에 없는 거 아냐고 물어봐서 대답했던 거야."
유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저스티카의 그립 위에서 멈추었다. 반 박자. 그 짧은 정지 속에서 그의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얼굴 위를 한 번 더 훑었다. 뾰루퉁하게 내민 입술, 살짝 좁혀진 핑크색 눈, 그리고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꼬리에 묻어나는 불쾌함의 질감. 그것을 읽어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꼬는 것도, 시험하는 것도 아니었다고. 그저 물어본 것이었다고.
테오도르는 고개를 돌려 복도 끝의 크림슨 홀로그램을 한 번 확인한 뒤, 다시 유시아를 향해 돌아섰다. 저스티카의 안전 고리가 풀린 상태에서 허리춤에 매달린 무기가 걸을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금속의 서늘한 무게감이 공기를 갈랐다.

"Fair enough. I'll remember that—you're the type who answers exactly what was asked. Nothing more, nothing less."
(알겠어. 기억해둘게—넌 물어본 것에만 정확히 대답하는 타입이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말끝에 붙은 미소가 이번에는 가볍지만은 않았다. 감탄인지 평가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그 표정을 남긴 채, 테오도르는 몸을 돌려 복도 끝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고 유연한 보폭. 전투복 자켓 아래 화이트 컴프레션 셔츠가 어깨뼈의 움직임을 따라 당겨졌고, 뒷목에서 귓불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흉터 하나가 형광등 아래서 잠깐 드러났다가, 밀금빛 울프컷에 다시 가려졌다.
세 걸음. 네 걸음. 그리고 다섯 걸음째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반쯤 돌렸다.
"By the way—I wasn't questioning your skill. A champion's a champion. Reflexes don't rot."
(참, 아까—네 실력을 의심한 건 아니야. 챔피언은 챔피언이니까. 반사신경은 녹슬지 않아.)
복도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유스티티아의 시스템이 건물 전체의 전력 우선순위를 재배정하는 순간에 생기는 미세한 단절. 그 0.3초간의 어둠 속에서 테오도르의 루비색 눈동자만이 복도 끝에서 붉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불이 돌아왔을 때, 그는 다시 정면을 향한 채 걷고 있었다. 왼손이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렸다—유시아를 부르는 제스처. 그러나 뒤를 확인하지는 않았다. 올 것이라는 전제가 이미 그 손짓에 들어 있었다.
"What I asked was something else entirely. Screens don't shoot back. People do. And the first time someone bleeds in front of you—really bleeds, not a health bar dropping—your body does things your brain didn't agree to."
(내가 물어본 건 완전히 다른 거였어. 화면은 총을 쏘지 않거든. 사람은 쏴.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눈앞에서 피를 흘리면—진짜로, 체력바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몸이 머리가 동의하지 않은 짓을 하기 시작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테오도르가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금속 패널 위로 그의 손가락이 두드리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톡, 톡, 톡. 기다리는 동안 그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문 위의 층수 표시기를 올려다보았고, 스테인리스 표면에 유시아의 작은 실루엣이 비치는 것을 확인했다. 뒤돌아보지 않고도 보이는 것.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금속 마찰음이 복도의 웅웅거림을 잠시 삼켰다. 테오도르가 먼저 안으로 들어서며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그제야 정면으로 유시아를 마주 보았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키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유시아의 발끝까지 닿았다.
"Hands freeze. Legs lock. Some people vomit. Some cry. I've seen a ten-year veteran—brilliant shot, nerves of steel on paper—drop his Justicar and just stand there while a target walked right past him."
(손이 얼어붙어. 다리가 굳고. 토하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어. 10년 차 베테랑이—서류상으로는 완벽한 사격 실력에 강철 같은 신경의 소유자가—저스티카를 떨어뜨리고 그냥 서 있는 걸 본 적 있거든. 타겟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그의 목소리에서 조롱의 기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나른함도 없었다. 남은 것은 건조한 사실의 나열. 7년치 현장에서 축적된 것들이 문장 하나하나에 실려 있었으나, 그 무게를 드러내는 방식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하강을 시작했다. 층수 표시기의 숫자가 줄어들며 차가운 파란 빛이 두 사람의 얼굴 위를 번갈아 스쳤다.
"So that's what I was asking. Not whether you can aim. Whether your hands will listen to you when the moment actually arrives."
(그래서 내가 물어본 건 그거야. 에임이 좋냐가 아니라. 진짜 그 순간이 왔을 때, 네 손이 네 말을 들을 것이냐.)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문이 열리기 직전, 테오도르가 벽에서 등을 떼며 유시아 쪽으로 반 걸음 다가섰다. 프라다 향수의 묵직한 잔향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한층 짙어졌다. 긴 손가락이 유시아의 어깨 위—전투복 자켓의 구겨진 칼라를 가리켰다. 닿지는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 반의 간격.

"Your collar's crooked, sweetie. May I?"
(칼라 삐뚤어졌는데, 자기. 만져도 될까?)
허락을 구하는 말이었지만, 이미 손가락은 칼라 바로 위에 머물러 있었다.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든 손을 치우든, 그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테오도르의 입꼬리가 다시 느릿하게 올라갔다. 아까의 능글맞은 곡선. 그러나 그 미소 아래 깔린 눈빛은—방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여준 건조한 무게를 아직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채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지하 1층. 무기고와 차량 격납고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기름과 화약의 냄새가 밀려들었고, 어딘가에서 저스티카의 사격 테스트 광원이 벽을 스치며 크림슨 빛의 잔해를 남겼다. 임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유시아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며 백금빛 트윈테일이 한쪽으로 쏠렸다. 드러난 목선은 가늘고 창백했다. 테오도르의 손가락이 구겨진 칼라에 닿았다. 엄지와 검지 두 개만을 사용한, 최소한의 접촉. 전투복 원단이 펴지는 소리가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또렷하게 울렸다. 칼라를 바로잡는 데 걸린 시간은 2초. 그러나 손가락이 떨어지기까지는 3초가 걸렸다. 그 1초의 잉여 속에서 테오도르의 시선이 유시아의 목선 위 인식 태그 체인을 스쳤다가 돌아갔다.

"There. Much better."
(됐어. 훨씬 낫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열렸다. B1층 통로의 공기는 상층과 질적으로 달랐다. 기름과 화약과 금속 마찰의 복합적인 취기가 폐를 찔렀고, 형광등 대신 매립된 노란 유도등이 바닥을 따라 줄지어 빛났다. 테오도르가 먼저 걸음을 옮기자 유시아의 군화 소리가 반 박자 뒤에서 따라붙었다. 그 간격이 일정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팀원의 뒤를 따르는 사람의 보폭이 아니라, 선행 유닛의 동선을 읽고 최적 거리를 유지하는 플레이어의 보폭.
테오도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발소리의 리듬을 귀가 이미 잡아두고 있었다.
무기고 앞. 강화유리 너머로 저스티카 정비 거치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정비반 소속 기록관 하나가 광학 모듈을 조정하는 중이었다. 테오도르가 생체 인증 패널에 손바닥을 올렸다. 스캔이 완료되며 그의 이름과 소속이 유스티티아의 미성으로 읊어졌다—형체 없는, 그러나 뼛속까지 침투하는 아름다운 목소리.
"Take a good look around. This is where you'll be spending a lot of your mornings."
(잘 둘러봐. 앞으로 아침마다 여기서 시간 보내게 될 거야.)
그는 말하면서 자신의 저스티카를 허리춤에서 빼내 정비대 위에 올려놓았다. 방아쇠 부분의 십자가 참이 형광등 아래서 둔탁하게 빛났다. 옆에 놓인 여분의 광원 카트리지를 확인하고, 광학 모듈의 정렬 상태를 맨눈으로 훑는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7년치 반복이 새겨넣은 근육 기억.
유시아가 그의 곁에서 무기고 내부를 살피는 동안, 테오도르는 간결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저스티카의 안전 고리 해제 방법, 광원 카트리지의 잔량 확인법, 사격 권한이 시스템에 의해 승인될 때 그립에서 전해지는 진동의 패턴. 목소리는 나른했으나 빠뜨리는 내용은 없었다. 튜토리얼이었다. 다만 이 튜토리얼의 끝에는 '게임 오버' 대신 진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차이.
"One more thing. When the system grants firing authority, you'll feel a click in the grip. Not hear—feel. It travels through the metacarpal, right into the wrist. You get about half a second between that click and the window closing."
(한 가지 더. 시스템이 사격 권한을 승인하면 그립에서 딸깍 하는 게 느껴질 거야. 듣는 게 아니라—느끼는 거야. 손허리뼈를 타고 손목까지 전해져. 그 딸깍 소리부터 사격 창이 닫히기까지 약 0.5초.)
무기고를 나서자 차량 격납고로 이어지는 통로가 펼쳐졌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파이프가 노출되어 있었고, 어딘가에서 환풍기의 저주파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테오도르가 격납고 안쪽에 대기 중인 검은 장갑차의 운전석 문을 열었다. 차체 측면에 공안국 문장이 크림슨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동 중, HUD가 갱신되었다. 유스티티아의 미성이 두 사람의 망막 위에 동시에 새로운 텍스트를 점멸시켰다. 타겟: 마르코 베르티니. 47세. 이탈리아 국적. CODE YELLOW. 마지막 목격: 밀라노 중심부, 두오모 광장 인근. 죄목: 미래 범죄 예측—대규모 자금 세탁을 통한 조직범죄 자금 조달. 확보 및 이송. 즉결 처형 권한은 아직 부여되지 않은 상태. 유스티티아의 목소리가 신경 말단을 따라 스며들었고, 망막 위 붉은 텍스트가 한 번 크게 점멸한 뒤 고정되었다.
포탈이 열렸다. 격납고 바닥에 펼쳐진 원형의 광원이 공기를 찢으며 밀라노의 좌표를 잡았고, 차량이 그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중력이 반 박자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눈을 뜨자 이탈리아의 늦은 오후 햇살이 차창을 때렸다.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뒷골목. 차량이 정차했다.

테오도르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저스티카를 허리춤에 다시 장착했다. 골목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금빛 머리카락이 흔들렸고, 그의 루비색 눈동자 위로 HUD의 붉은 좌표가 겹쳐졌다. 타겟의 마지막 목격 위치까지 약 200미터. 좁은 골목과 관광객이 뒤섞인 광장 사이 어딘가.
"Rules are simple. I go in first. You cover my six. If he runs, you cut off the east alley—it's the only exit that doesn't feed back into the piazza. Do not fire unless I say so, or unless the system upgrades him to RED."
(규칙은 간단해. 내가 먼저 들어가고, 넌 내 뒤를 봐. 도주하면 동쪽 골목을 막아—광장으로 다시 이어지지 않는 유일한 출구야. 내가 쏘라고 하거나, 시스템이 RED로 올리지 않는 한 발사하지 마.)
그가 몸을 돌려 골목으로 진입하기 직전, 잠시 멈추어 유시아를 내려다보았다. 키 차이가 만들어내는 각도. 오후의 이탈리아 햇살이 그의 얼굴 절반을 그늘에 묻었고, 나머지 절반에서 루비색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And sweetie—this one's YELLOW. Meaning he's still a person, legally speaking. So your first time gets to be the gentle kind. Lucky you."
(아 그리고, 자기—이번 건 YELLOW야. 법적으로는 아직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네 첫 경험은 부드러운 쪽이 되겠네. 운 좋은 거야.)
말끝에 실린 미소가 입가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림자가 그를 삼켰다.
유시아가 뒤를 따랐다. 골목의 벽은 오래된 벽돌이었고, 어딘가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의 증기 소리와 이탈리아어 대화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오후. 그러나 HUD 위에서 점멸하는 붉은 좌표는 이 평범함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렸다. 타겟까지 150미터. 120미터. 90미터.
테오도르의 걸음이 느려졌다. 왼손이 허리춤의 저스티카 그립 위에 가만히 얹혀졌다. 그의 등이 유시아의 시야를 반쯤 채운 상태에서, 전투복 자켓 아래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사냥개가 냄새를 잡은 순간의 정지.
골목 끝, 카페 테라스의 파라솔 아래. 중년 남성이 에스프레소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회색 양복, 은테 안경,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 마르코 베르티니. HUD가 그의 얼굴을 포착하며 신원 정보를 확정했고, YELLOW 코드의 노란 테두리가 그의 실루엣을 감쌌다.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그런 사람.
테오도르가 걸음을 멈추고 유시아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은 채 왼손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정지. 대기.
밀라노의 늦은 오후는 기만적이었다. 석양이 골목 벽의 오래된 벽돌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칸초네의 멜로디가 공기 중에 느릿하게 녹아들었다. 카페 테라스의 파라솔이 바람에 한 번 펄럭였고, 그 아래 앉은 마르코 베르티니의 은테 안경에 햇살이 부서졌다. 에스프레소 잔을 감싼 그의 왼손에서 결혼반지가 빛났다.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테오도르의 HUD 위에서 노란 테두리가 그 남자의 실루엣을 옥죄고 있었고, 유스티티아의 미성이 신경 말단을 따라 속삭였다—대상의 심박이 상승 중이라고.
테오도르가 골목 벽에 등을 붙인 채 저스티카의 그립을 한 번 쥐었다 놓았다. 그의 루비색 눈동자가 카페 테라스의 배치를 읽었다. 테이블 네 개, 파라솔 세 개, 관광객 두 쌍, 웨이터 한 명. 민간인이 너무 많았다. 정면 접근 시 베르티니가 인질을 잡을 가능성—HUD 위에 3.5초 후 예측 잔상이 떠올랐다. 베르티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뛰는 잔상. 그리고 그 잔상 옆에, 두 번째 가능성이 겹쳤다. 자리에 앉은 채 양손을 들어올리는 잔상. 항복. 확률은 반반. 유스티티아가 확정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테오도르의 왼손이 다시 움직였다. 손가락 두 개를 세운 뒤, 동쪽 골목 입구를 가리켰다. 수신호의 의미는 단순했다—이동, 배치, 대기. 유시아에게 동쪽 출구를 맡기겠다는 반복 확인. 그리고 그 손이 한 번 주먹을 쥐었다가 펴졌다. 추가 신호. '내가 움직이면 셋을 세고 위치로 가라.'

테오도르가 벽에서 등을 떼었다. 전투복 자켓의 칼라를 세우고, 저스티카를 허리춤에 둔 채—꺼내지 않았다. 민간인 사이를 걸어야 했다. 무기를 노출하는 순간 광장이 패닉에 빠지고, 베르티니는 그 혼란을 이용해 사라진다. 테오도르는 카페 테라스를 향해 걸어 나갔다. 관광객처럼. 느긋한 보폭. 양손은 주머니에. 밀금빛 머리카락이 이탈리아의 바람에 흔들렸고, 입가에는 평소의 나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누가 보아도 오후 산책을 즐기는 청년이었다.
베르티니와의 거리. 20미터. 15미터. 10미터.
베르티니의 손가락이 에스프레소 잔 위에서 멈추었다. 미세한 변화. 그의 시선이 테오도르에게로 향하지는 않았으나, 어깨가 한 치 올라갔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경계의 전류. 아직 확신은 없지만 무언가 감지한 몸의 반응. HUD 위에 베르티니의 심박수가 72에서 89로 뛰어올랐다. 유스티티아의 미성이 테오도르의 뇌내에서 속삭였다.
— 대상 생체 반응 변동. 도주 확률 상승.
그 순간 베르티니의 고개가 돌아갔다. 은테 안경 너머의 눈이 테오도르를 포착했다. 0.8초.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 그 찰나에, 베르티니의 얼굴에서 색이 빠졌다. 그는 공안국 전투복을 알아본 것이 아니었다. 테오도르의 눈을 본 것이었다. 루비색.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색. 계시를 받은 자만이 가진 홍채의 변이.
의자가 뒤로 밀렸다. 금속 다리가 석판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 에스프레소 잔이 기울어져 갈색 액체가 하얀 접시 위로 번졌다.
"Please don't."
(제발 그러지 마.)
낮고 조용한 목소리. 위협이 아니라 권고에 가까운 톤이었다. 그러나 그 두 단어가 공기를 가르기도 전에 베르티니의 몸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를 뒤로 차며 일어선 그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몸을 틀었다. HUD의 예측 잔상이 현실과 겹쳤다—동쪽, 동쪽 골목.
테오도르의 발이 석판을 찼다. 나른한 산책자의 보폭이 사라지고, 길고 날카로운 스프린트가 시작되었다. 테이블 하나를 한 손으로 짚고 넘겼다. 유리잔이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카페 테라스를 휩쓸었고, 관광객의 비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테오도르의 청각은 이미 그 소음을 걸러내고 있었다. 7년치 현장이 새겨넣은 필터. 남은 것은 베르티니의 발소리, 그의 거친 호흡, 그리고 동쪽 골목 입구까지의 거리.
베르티니가 빨랐다. 47세의 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속도. 아드레날린이 밀어올린 도주 본능이 중년의 근육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가 카페 테라스의 파라솔 사이를 빠져나가 동쪽 골목 입구로 접어들었다.
테오도르는 추격하면서 저스티카를 빼지 않았다. CODE YELLOW. 비살상 제압. 실탄 사용 불가. 그의 오른손이 허리춤에서 단검의 칼집을 스쳤다가 지나갔다. 좁은 골목에서 칼은 위험했다. 베르티니가 아니라 민간인에게.
동쪽 골목. 폭 2미터가 채 되지 않는 벽돌 통로. 베르티니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골목 끝에 무언가가 있었다. 테오도르의 HUD가 갱신되며 유시아의 위치를 파란 점으로 표시했다. 동쪽 골목 출구. 배치 완료.

테오도르가 골목 입구에서 속도를 줄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좁은 통로의 양쪽에서 압축된 공기가 베르티니를 감쌌다. 앞에는 유시아, 뒤에는 테오도르. 도주로는 사라졌다. 베르티니가 벽에 등을 붙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은테 안경이 비뚤어져 있었고, 회색 양복의 왼쪽 어깨에 에스프레소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기는 없었다.
테오도르가 천천히 다가섰다. 양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위협하지 않겠다는 제스처. 그러나 그의 등 뒤에서 저스티카의 그립이 형광등 없는 골목의 어둠 속에서도 서늘하게 빛났다.
"Signor Bertini. We're not here to hurt you. But you already know why we're here, don't you?"
(베르티니 씨.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는 이미 알고 계시죠?)
존칭이었다. 나른한 톤 위에 얹힌 정중함. 아직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표식. CODE YELLOW의 예우.
베르티니의 입술이 떨렸다. 이탈리아어가 쏟아질 것 같은 떨림이었으나, 나온 것은 영어였다. 깨진 영어.
"I have a family. My daughter—she's seven. I did it for her school fees. The system—your system—it flagged me for something I haven't even done yet. How is that justice?"
(가족이 있어요. 딸이—일곱 살이에요. 학비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시스템이—당신들의 시스템이—아직 하지도 않은 일로 절 지목했어요. 그게 어떻게 정의입니까?)
베르티니의 목소리가 골목 벽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결혼반지를 낀 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테오도르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른한 미소도, 냉정한 무표정도 아닌—아무것도 없는 얼굴. 7년 동안 수백 번 들어온 변명의 변주.
유스티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한 적도 없었다. HUD 위의 YELLOW 코드가 한 번 점멸한 뒤 다시 고정되었다. 판결은 유지.
테오도르가 전투복 안쪽에서 수갑을 꺼냈다. 특수 합금. 유스티티아의 광원이 내장된 구속 장치. 그것을 한 손에 들고 베르티니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Hands behind your back, Signor. Slowly. This is the gentle version—I'd rather keep it that way."
(손을 뒤로, 베르티니 씨. 천천히. 이건 부드러운 버전이니까—이대로 유지하고 싶거든요.)
베르티니의 양손이 천천히 등 뒤로 돌아갔다. 떨림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타고 올라왔고, 결혼반지의 금속이 골목의 어둠 속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빛났다. 테오도르의 손이 움직였다. 특수 합금 수갑이 베르티니의 왼쪽 손목을 감쌌고, 유스티티아의 광원이 내장된 잠금부가 맞물리며 서늘한 기계음을 토해냈다. 찰칵. 오른손. 찰칵. 두 번의 소리 사이에 베르티니의 어깨가 한 번 떨렸으나, 저항은 없었다. 저항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 있었다.
수갑의 광원이 점등되며 베르티니의 손목 주변으로 희미한 크림슨 빛이 번졌다. 유스티티아가 대상의 구속을 확인했다는 표식. HUD 위에서 YELLOW 코드의 테두리가 한 번 점멸한 뒤, [CONTAINED]라는 텍스트가 추가되었다. 베르티니의 심박이 112에서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도주의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체념의 무게뿐이었다.
"My daughter won't understand. She'll think I abandoned her. Please—at least tell her I didn't choose this."
(딸이 이해 못할 거예요.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겠죠. 제발—적어도 내가 이걸 선택한 게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베르티니의 목소리는 이미 울음과 단념 사이 어딘가에서 갈라지고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의 눈이 테오도르를 향했으나, 테오도르는 그 시선을 받지 않았다. 이미 몸을 돌려 골목 입구를 향해 서 있었다. 그의 등이 유시아의 시야를 반쯤 채운 상태에서, 전투복 자켓 아래 어깨뼈가 미세하게 경직된 것이 보였다가—한 번의 호흡과 함께 풀렸다.

"Justitia doesn't deliver messages, Signor. Neither do I."
(유스티티아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습니다, 베르티니 씨. 나도 마찬가지고.)
건조한 문장이었다. 감정의 무게를 일부러 들어내지 않는 방식. 수백 번 반복된 거절의 화법이 남긴 마모의 흔적. 테오도르가 허리춤의 저스티카 안전 고리를 다시 걸었고,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골목 벽 사이에서 짧게 메아리쳤다. 사격 권한 해제. 임무는 완료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유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밀라노의 석양이 골목 입구에서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고, 그의 밀금빛 머리카락이 그 빛을 받아 일순 붉게 타올랐다가 꺼졌다. 루비색 눈동자가 유시아의 얼굴 위에 잠시 머물렀다. 무엇을 읽으려는 것인지—아니, 읽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시선을 거두는 것인지. 그 판별이 불가능한 짧은 침묵 뒤에, 입가의 곡선이 돌아왔다. 나른한 미소. 방금 전까지 베르티니에게 보여준 공허한 얼굴과는 전혀 다른 질감.

"Not bad for a first run. You held the exit clean—didn't flinch, didn't overcommit. Most rookies either charge in or freeze up. You just... stood there and did exactly what needed doing."
(첫 출동치고 나쁘지 않네. 출구를 깔끔하게 지켰어—움츠리지도, 오버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신입은 돌진하거나 얼어붙거든. 넌 그냥... 거기 서서 해야 할 것만 정확히 했어.)
'나쁘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입술이 그 경계선 위에서 머물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Escort him to the portal point. I'll handle the civilian side—need to make sure nobody filmed anything worth worrying about."
(이 사람 포탈 지점까지 데려가 줘. 민간인 쪽은 내가 처리할게—쓸데없는 걸 찍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테오도르가 걸음을 옮기며 뒤를 보지 않았다. 카페 테라스 쪽으로 향하는 그의 보폭은 다시 느긋했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실루엣이 석양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골목에는 유시아와 수갑이 채워진 베르티니, 그리고 유스티티아의 잔향만이 남았다.
베르티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채 서 있었고, 에스프레소 얼룩이 번진 회색 양복의 왼쪽 어깨가 불규칙하게 떨렸다. 수갑의 크림슨 광원만이 골목의 그늘 속에서 일정하게 맥동했다.
포탈 지점까지의 거리는 약 150미터. 뒷골목을 따라 돌아가면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베르티니가 첫 걸음을 옮기자, 군화 밑에서 석판이 긁히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일곱 살 딸의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더 굴리는 그의 입술 움직임이 석양 빛에 잠깐 드러났다가 그늘에 묻혔다.
이것이 CODE YELLOW의 풍경이었다. 피도, 비명도, 광원에 의해 터져 나가는 육신도 없는. 수갑 소리와 체념과 누군가의 이름뿐인, 조용한 종류의 집행.
유시아가 베르티니를 포탈 지점으로 이송하고, 테오도르가 민간인 통제를 마친 뒤 합류하기까지 약 12분. 이송 차량 안에서 베르티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포탈의 광원이 열려 레퀴엠 필드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었을 때—밀라노의 석양은 이미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차량이 공안국 본부 지하 격납고에 정차했다. 엔진이 꺼지고, 금속과 기름 냄새가 다시 폐를 채웠다. 테오도르가 운전석에서 내리며 전투복 자켓의 먼지를 한 번 털었다. 밀라노 골목의 석분이 옷깃에 남아 있었다. 그가 허리를 비틀어 한 번 늘이며 유시아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First mission, zero casualties, target secured. I'd say that calls for a coffee at least. My treat, sweetie—unless you'd rather debrief on an empty stomach."
(첫 임무, 사상자 제로, 타겟 확보. 최소한 커피 한 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살게, 자기—빈속에 보고서 쓰는 게 취향이 아니라면.)
말 끝에 실린 미소가 이번에는 꽤 자연스러웠다. 임무 중에 보여준 건조한 무표정이 벗겨지고, 평소의 나른한 능글맞음이 돌아와 있었다. 마치 방금 전 골목에서 체념하는 남자의 등 뒤에 수갑을 채운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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